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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좌절한 민주 투사가 경비원으로 봉직하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서 오소영과 김수영은 파란 하늘 모래시계 모양의 뭉게구름 아래 마주 서 있다. 김수영은 먼 훗날에 후회하고 싶지가 않아서. 아,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정말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기가 싫어서 애원한다. "이러지 마라. 한 사람만, 단 한사람만 믿어 주면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며? 날 믿어. 나는 널 믿을게. 세상에 지기 싫다." "......" "......" 오소영의 눈빛이 맹렬하게 고요하다. 제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들이 인간이건 짐승이건 보통 저런 눈을 갖는다. "모르겠어? 우리 때문에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착한사람이 불에 타 죽었어. 단 한 사람? 우리 때문에 우리를 믿어 주던 단 한 사람이 다쳤어. 보리가 다쳤어. 이제 우리 편은 단 한 사람도 없고, 그게 세상이야. 이기고 싶으면 너나 이겨. 난 이 나라가 지긋지긋해." "......" "우리가 미쳤던 거야. 그만 내 인생에서 사라져." 아윈 오소영의 감색원피스가 바람에 퍼럭인다. 엉뚱하게도 김수영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수평선 위에 꽂힌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본다. 바람은 모습이 없어. 하지만 바람은 흔들리는 것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오소영이 김수영에게 루비 반지를 되돌려 주고는 떠난다. 오소영이 바람의 모습이 되어 흔들리다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흩어져 버린다. 혼자 남겨진 김수영은 흔들리며 생각한다. 인간은 운명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우연을 닮은 운명이 인간을 농락한다. 우연은 운명이 쓴 비열한 가면이다. 그리고 사랑은 무너졌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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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할 정도로 열심히 웃으면서 봤다. 근데 끝으로 갈 수록 앞부분은 역시 마음속의 판타지였고, 결론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인가 싶었다.
책을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웃음 후엔 싸한 답답함 만이 남는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결론은 언제나 그렇다. 한번도 그런 것이 아닌 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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