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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야, 나도 너 마음껏 술 처먹게 놔두고 싶어. 그까짓 인생 얼마나 된다고 하고 싶은 일 못하면서 살겠니. 난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 하루에 담배 한 보루씩 피우고 밸런타인 한 병씩 비우고 숯불갈비 팍팍 태워서 먹고 화끈하게 살다 죽으면 되지, 유기농에 채식주의에 스님같이 살거면 뭐할 오래 사니. 난 니가 술처먹다 죽더라도 그게 너의 행복이라면 밀어주고 싶거든. . . . 지난번에 TV에서 봤는데 너무 끔찍하더라고. 똑같이 마셔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간경화가 더 빨리 온데. 한번 그렇게 되면 다시는 회복이 안 된대. 나 너무 무섭더라고. 형이야 술 먹다가 복수 차서 죽어도 하는 수 없지만, 니가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섭고 눈물이 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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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갑작스럽고 피할 수 없었다.내 나이 서른아홉, 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블랙홀에 빠졌다. 그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비명도 환호도 닿지 않는 마하 39의 속도로 미친듯이 질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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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의 집은 일반적이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입체적 성격의 집단이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교육과 돈 문제, 특히 돈과 관련되어 얽혀 있는 에피소드 들은 그래 이건 현실일지도 몰라를 깨닫게 해 준다.
혜나의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첫째 철원 내외, 둘째 학원 내외, 그리고 혜나까지.. 이 가족들 참 범상치 않은 현란한 삶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다. 황당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을 가진 각각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고유 영역을 지키며, 반목과 공생을 하며 살아간다. 가족이란 의당 그런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버린 가족이란, 하하호호 즐거운 한 때 보다는 현실의 벽, 현실의 시련, 그러한 벽과 시련을 만드는 돈 때문에 가끔은 삐그덕 거리기도, 가끔은 그로인해 쨍그랑 깨질 때도, 아니면 그럭저럭한 행복을 느끼며 어쨌거나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집단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제 가족도 단순 혈연관계가 아닌 필요에 의한 관계로 변모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한 부스러기 중 하나가 되어버린지 오래인듯 싶으니 말이다.
서른 아홉의 혜나. 아침부터 데킬라를 퍼 마시는 여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 낸것 없이 엄마와는 이혼한 아빠의 카드를 부여잡고 살며, 조강지부(?)는 버리고, 불륜은 에둘러 정당화시키고, 사회재단법인 이사자리 까지 꿰 차고 어쨌거나 당당한, 어떻게 보면 극도로 이기적인 여자의 전형.
나는 생각한다. 서른 하나의 나와 서른 아홉의 혜나는 무엇이 같으며 무엇이 다른지. 내가 서른 아홉이 되어서도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잉여스러움을 벗어나지 않으면 혜나와 다를바가 무엇이 있을지.. 웃으며 보고, 어이없어 했으나 종내에는 씁쓸하게 끝나버린 이 이야기.
제목의 사랑이 달리는 현재 진행형 처럼, 달렸다의 종결형이 될 수 없는 것 처럼, 내 인생도 열심히 달리고, 미래도 열심히 달리고, 내 사랑도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 보면 이 가늠할 수 없는 속도 안에서 나는 뒤쳐질 일을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면 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을까.. 아니면 당장 멈춰 버릴수 없는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눈 꼭 감은 채 벗어나고 싶어할까. 우선 서른 아홉이 되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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