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바뀐 것입니다. 다만 바뀌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바뀌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남이 가진 것을 강탈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지금의 정부는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면서 힘이 빠져버리니까 기득권 가진 사람들, 특히 부당하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억울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 역사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정수재단 건만이 아니라 지난날 역사의 피해를 입었던 많은 사람들의 피해가 다 복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역사는 물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사 정리라는 것을 어디까지 해야하나?'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그 한계를 긋기가 어렵고 또 역사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나가는 데 필요한 만큼 '판단이라도 하고 넘어가자, 하다 못해 이름표라도 갈아붙이자!' 하는 그런 것이 역사 정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렇게 장물이 그냥 남아 있고 그 주인이 정권을 잡겠다고 하는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려니 무척 힘이 듭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우리가 이런 상황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높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역사 정리라는 것도 더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독일의 라우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60년 전 히틀러 정권의 만행, 그것을 지금 독일 국민들이 점점 잊고 있다. 그것을 우려한다. 기억하자!' 고 경고하는 것을 보며 공감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5.16이라는 것이 저에게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P.124-126 . 성공과 좌절. 노무현.
5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철로를 잃은 기차처럼 제 길이 아닌 곳으로 폭주해 가고 있다.
믿음은 깨어져 버렸다.
5년 전 오늘, 그리고 1년 반 전의 겨울.
참고 버티며 노력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사는 세상은 내 부모가 살던 세상과는 분명 다르리라는 믿음.
내 아이에게는 좀 더 괜찮은 세상 앞으로 데려다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믿음이 깨어진 후로는 절망의 연속이다.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
모든 것이 힘겨워 발버둥 쳐도 변하는 건 없을거라는 절망.
어떻게든 처절하게 버텨나가는 나를 보며 그들은 또 비웃을 거라는 절망.
20대의 그 시절보다,
조금 나이를 더 먹어 어른이 된 30대의 지금.
어디서 '믿음'을 되 찾고 어떻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바로 내 눈 앞의 손조차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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