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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려 애쓰지 마라. /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本/引く

by 솔앙 2014. 5. 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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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란 교수님의 책을 천천히 챕터별로 읽고 있다.

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정말 많은걸 배우고 있다.

아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 가짐을 다시 확인해 보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 처럼 잘 해나가야 겠다 다짐을 해 본다.

정말 내 마음의 큰 힐링이 되는 책..

 

난 박혜란 교수님이,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라서,

아들 셋을 번듯하게 서울대에 보낸 엄마라서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고 3인 막내 아들을 놓고 중국에 훌쩍 교환교수로 떠났다는 엄마.

먼지가 자기네끼리 뭉쳐 굴러다닐 시간을 줘야 한다는 대책없는 엄마.

엄마는 네가 대학에 떨어져도 눈하나 깜짝 안할 사람이라는걸 막내에게 이야기해주는 둘째의 모습..

이런걸 조금 보고나니, 정말 나를 위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난 남들이 아이를 어떻게 길렀는지, 어떻게 교육시켰는지에 대한 그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그 사람, 자신의 아이를 길렀을 뿐인데, 마치 육아에 대해 교육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일장 연설하는 모습이 참 꼴불견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건 잘난 애를 놓고 책 하나 써서 내 돈벌이 하자는 것으로 밖에 안보이고, 개중에는 그런 잘난 애를 자기방식으로 망쳐놓은 부모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쓰여진지도 오래된 이 육아서를 읽는 것의 우선은 너무 재미있다.

집안 청소 대신 온 집을 굴러다녀가며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는 엄마.

39살의 나이에 다시 대학원에 진학 하며 공부를 시작한 엄마.

아들 셋의 뒷바라지는 커녕, 고3 아들래미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만든 엄마.

어쩌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이상향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키워보면 다 안다, 아이들을 키우려 애쓰지 마라,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그들은 '믿는 만큼' 자라는 신비한 존재이니까.

 

아이들은 힘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충분히 행복하다. 잘 키우겠다고 너무 오버하지 말자.

 

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집안이 아이는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못하고 결국 공부도 잘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날 수 있다고. 한국에 와서 보니 친구들이 죄다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의 발전을 봉쇄하고 있어 아주 답답하던 차였다고 했다. "당신은 아이들의 영감을 불어넣을 줄 아는 어머니이다."

 

무엇보다 대화는 반드시 말로 하는 것만도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부모 자식간의 대화에서 말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 바로 스킨십인 것 같다. 스킨십처럼 친밀한 대화가 또 어디 있으랴. 아이들이 지쳐보일 때 나는 "너 무슨 일 있었니?" 라고 묻는 대신, 아이들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말한다. "사는 게 힘들지?" 내가 우울해하면 아이들 역시 조용히 엄마를 안아 주며 말한다.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대부분의 엄마들은 천재를 둔재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다 넘어간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이 걸작이었다. "남보다 빨리 배우면 뭘 해요. 끝까지 배워야죠."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 뜻대로' 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아빠 노릇을 꽤 잘하고 있는 젊은 아빠들이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배우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그러나 엄마 노릇에 정답이 없듯이 아빠 노릇에도 정답은 없다. 다만 아빠라는 사람을 아이들이 잘 이해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자신이 부모가 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어찌 된 셈인지 아이들에게 신처럼 군림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대학에 막 들어간 큰애와 오붓하게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언제나 의젓한 아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대견스럽게 보이기에 내딴에는 인사를 차린답시고 말을 건넸다.

"그래, 그동안 참 힘들었지?"

"예, 거친 황야를 홀로 걷는 기분이었어요."

큰애가 웃지도 않고 읊은 대사는 마침 얼마 전 청문회에 출석한 한 5공 인사의 입에서 나와 신문 가십난에서 씹힌 것과 한 자도 틀리지 않는 그 대사 그대로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깔깔대고 웃었는데, 결국 그 웃음 끝에 눈물이 따라 흐르고 말았다. 그동안 '별난' 엄마 밑에서 아이 혼자 견뎌 냈을 그 황야, 그 바람, 그 외로움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처럼 바보는 없다.

 

"그렇지만 형들은 다 서울대에 들어갔는데 저 혼자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죠?"

나는 이때다 싶어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동윤아, 형들이 다 서울대 들어갔다고 해서 너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어. 만약 형들이 다 못들어갔다면 동윤이도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그렇다고 형들이 다 들어갔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안 들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되잖아. 무슨 이야기냐 하면, 동윤이는 어디까지나 동윤이라는 거야. 남들이 보면 세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이지만, 엄마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셋째 아들이잖아."

하나밖에 없는 셋째 아들. 말을 해 놓고 보니 내가 한 말인데도 참으로 그럴듯 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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