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를 2번 보고 800페이지에 달하는 '핑거스미스'도 다 읽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왜 새라 워터스가 'inspired by' 를 원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확실히 나는 책을 먼저 읽지 않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책도 물론 재밌었지만, 영화와 맞물리는 400페이지 즈음까지 너무 지루했다. 만약 반대로 책을 먼저 읽었다면 영화의 반쯤까지 역시 지루했을 터.
이후로는 엄청나게 속도감이 붙어 거의 한나절만에 다 읽어 내려갔지만, 익히 아는 부분을 재밌는척 넘기기는 확실히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와 갈라지는 그 시점, 나의 호기심은 다시 엄청나게 자극되었고, 사뭇 다른 절정과 전혀 다른 결말을 보면서 히데코와 숙희만큼 신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지만, 씁쓸하고도 담담한 수와 모드의 마지막 모습과 둘의 대화는 가슴 속에 꼭꼭 눌러담았다. 어쨌거나 모두 다 행복해질테니 말이다.
영화는 반전과 반전들이 나오는데, 사전내용을 전혀 모르고 간 나는 솔직히 모든 반전들에 다 흠칫하면서 놀랐고, 히데코와 숙희의 감정선까지 모두 좋았기 때문에 박찬욱 감독이 이례적으로, 대놓고 친절하고 대놓고 쉽게 찍은 이 영화가 박찬욱 감독이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 사이를 오간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여전히 '친절한 금자씨' 가 박찬욱 감독 작품 중 베스트이지만, 그림자 보다는 빛 쪽으로 조금 더 돌아선 이 작품이 '금자씨' 나 '인디아' 보다 더 히데코와 숙희를 기억하게 해줄 것 같았다.
분명히 주인공 둘의 감정선은 수와 모드 쪽이 더 촘촘하다. 활자의 특성상 차곡차곡 밟아나가며 절정을 향해 한계단씩 올라가는 발걸음은 조심스럽고, 스토리는 긴장과 이완을 오가다 긴장이 최대치에 도달한 그 시점에 사건이 일어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수와 모드만 남는데 그 과정들이 뭔가 안타깝고 왠지 쓸쓸하여 어쨌거나 이제부터라도 남은 둘이 진실을 모두 받아들이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거란 슬픔 속 희망적 엔딩의 끝맺음까지 어느 하나 빈틈 없이 잘 짜여져 있다.
'아가씨'는 그런 핑거스미스의 기법을 처음에는 따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두꺼운 책에 비해 겨우 2시간을 오가는 러닝타임은 감정의 흐름이 듬성듬성하고, 최대한 친절하려고 했지만 결국 넘어가버려 궁금한 작은 구멍들도 생기고, 무언가 얼기설기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중간 즈음부터 시작되는 박찬욱식 변주는 원작이 있는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 처럼 박찬욱식으로 재해석 되고, 그랬다면 어땠을까로 이야기를 완전 전환하여 결국 앞 부분에 내가 파 놓은 작은 구멍들을 잊지않고 빠짐없이 살짝살짝 메꿔준다. 약간 갑작스럽게 두 사람에게 주어진 관계의 진전도 이미 박찬욱식으로 설득당해 버린 후라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핑거스미스의 씬스틸러는 석스비부인. 아가씨의 씬스틸러는 히데코의 이모. 전혀 다른 설정에 전혀 관계 없는 두 사람에게서도 나는 새라워터스식으로 또 박찬욱식으로 설득당한 후 서로의 존재의 이유에 관해 서로 짝을 맞춰 줄을 긋는 문제처럼 엮어버리고는 각각 스토리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사람들이라고 점 찍어버렸다.
스포일러를 한 번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어질까봐, 이 재밌는 두가지의 이야기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박찬욱 감독이 그 어려운 것들을 매번 해낸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난 충분히 만족했고, 평소라면 내 스타일 아니라며 읽지 않았을 책까지 단숨에 읽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쉬운 영화를 만들 줄도 알면, 가끔은, 친절해 보일까봐 그런다며 자꾸 눈에 분홍 아이섀도우 바르지 말고, 대놓고 한 번씩은 좀 하이힐 벗어줬으면 좋겠다.
영화 아가씨의 실제 촬영지.
건물의 한 쪽은 일본식, 한 쪽은 영국식.
일본 미에현 쿠와나시에 위치한 록카엔(육화원).
사진출처 : http://www.intsurf.ne.jp/~rokkam/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