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작점에서 두 대의 롤러코스터가 각각 출발한다.
이 끝과 저 끝에서 시작된 롤러코스터는 서로 다른 각도의 굴곡을 지나면서, 전혀 다른 배열의 코스를 따라 달린다. 두 대의 롤러코스터는 가끔씩 교차하며 서로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레일이 놓여져 있는대로 달리고는 있지만, 진행 방향의 레일이 어떻게 놓여져 있는지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가 없다. 힘든 오르막을 오르고,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듯한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나고, 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회전구간을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다.
그렇게 순간순간 교차하며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롤러코스터는 어느 시점부터 나란히 레일을 달리며 종착점을 향해 간다. 두 대의 롤러코스터가 향한 종착점은 단 한 곳으로 귀결되며, 그 끝에 다다랐을 무렵 두 대의 롤러코스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점점 안정을 되찾아간다. 롤러코스터가 출발했을 때 보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옷 매무새도 흐트러졌지만, 끝까지 해내고야 말았다는 기분에 안도감까지 더해진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누구나 똑같을 지도 모른다.
한 남자가 있다.
특별한 직업 없이 몸을 쓰는 사람. 복서, 킥복싱 선수 였던 적이 있었던,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5살 아들이 생겨버린다. 프랑스 북부에서 남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제대로 된 밥 한끼 사줄 돈도 없는 그런 사람.
하지만, 절망 같은건 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을, 그렇게 쉽지 않은 의미의 하루를 살아갈 뿐.
그리고 한 여자가 있다.
동거하는 남자가 있지만, 클럽에서 또 다른 남자를 찾아 자신의 여성성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이 갑작스레 다가온다. 그리고 장애를 얻게 된 그녀는 우연히 만났었던 그에게 전화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찾아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스테파니와 알리라는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 두 대에 번갈아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온통 두근대고 울렁거리는 가운데 스크린을 바라보며 결핍 투성이인 그들의 처절한 삶에 대해 재고 따지고 평가하고 있었다.
미끈한 다리를 뽐내며 클럽에 드나들던 스테파니는 자신이 사랑하던 범고래로 인해 두 다리를 잃고 오열한다. 너를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도 그녀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좌절의 시간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던 스테파니의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 한 방울을 보며 그녀가 잘 이겨내고 있는 것이 아닌, 이겨낼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처절한 현실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오른쪽, 왼쪽 이라는 문신을 새겨 넣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행복해 하던 일인 동시에 지금의 불행을 안겨준 범고래와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상처를 크기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누나에게 아들을 맡겨놓고 고작 나이트클럽 문지기를 하고, 야간 경비를 서고, 몸을 쓰는 내기 격투에 참가하고, 아무 여자와 순간의 유희를 즐기던 알리의 모습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현재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스테파니를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금은 아이같이 철이 없고, 두번의 생각 따윈 없는 직관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그의 입으로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단 한 마디, Je t'aime(사랑해)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훅 하고 나오면서 나의 부질없는 재단따위는 와르르 무너져 버림을 알았다.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소재임에도 주인공들은 담담하게 감정을 절제한다. 화면과 이야기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제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스크린 안에 꽉꽉 눌러담아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의 연속의 단조로움은 배우들의 표정과 작은 손짓 하나만으로도 극대화 되어 스크린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오롯이 전해졌다. 특히 스테파니 역을 맡은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는 더할나위 없는 완벽의 스테파니를 보여준다. 다른 배우의 스테파니는 절대 떠올리지 못할 만큼 말이다.
솔직히 영화적 구성은 그리 세련되지 못한듯 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사건의 전조는 진부함을 버리지 못했고, 장면의 전환도 가끔은 매끄럽지 못한 채 거칠다. 만약 그런 느낌을 이 거장의 감독이 원했다면 성공한 것이겠지만, 이야기의 깊이나 적절하게 깔리던 OST,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이어주는 장면의 구성들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곧 심오한 예술 영화라는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프랑스 영화도 나름의 대중성과 깊은 이해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영화란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그런 점만으로도 아쉬움은 모두 상쇄시킬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 힘들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며 느낀다.
온통 커튼이 둘러쳐진 어두컴컴한 방에서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커피를 타던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바다로 업고 들어가던 그.
단돈 500유로를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싸움판에 나가 피터지게 싸우는 그의 모습을 호기심에 가까운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
두 사람은 결핍과 결여로 커다랗게 비어있는 서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런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그대로의 서로를 담담하게 마주보고 있었을 뿐인듯 싶었다.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 결핍과 결여를 떠안은 구멍 투성이의 인간이 아닌 그냥 나로서의 나에게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소리없이 말해주며 서로의 손을 가만히 티나지 않게 스치듯 잡아주는 것 같았다.
20130504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