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 혹은 인생의 스포일러 들어있음..
결혼하지 않은, 아이낳지 않은 여성이라면 절대 영화도 리뷰도 보지 말것.
남자라면 누구던 환영. 남자들이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 꼭 알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이야기.
이해만 해 준다면 군대 이야기 정도는 몇 번이고 들어 드리리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모두 감수할 수 있음!!
가끔가다 현실은 픽션보다 처절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현실을 따라잡는 픽션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픽션이라기 보다는 그냥 팩트다.
이 일을 겪은 사람만이 알고, 겪어봤던 사람만이 알아야 하는, 앞으로 겪을 사람이라면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의 A부터 Z까지, 고스란히 모든 것이 영화 안에 담겨있다.
그 시간들을 견뎌내느냐, 견뎌내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그들과 나의 차이였을 뿐. 과정은 100% 똑같았다.
이것이 바로 리얼이다.
바바라와 니콜라는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여느 부부들처럼 아이를 기른다.
한 줄로 정리될 수 있는 이렇게 간단한 일의 결과로 두 사람의 인생이 뒤바뀐다. 철학전공 박사과정의 마무리와 교수 임용을 눈앞에 두고 서 있던 바바라는 논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게 되고, 쿠엔틴 타란티노를 꿈꾸며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있던 니콜라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회사로 출근한다. 한 순간의 무모한 열정으로 택한 아이라는 존재는 생명의 신비라 일컬어지는, 혹은 모성, 부성을 일깨우는 경이로운 생명체가 아니라 어찌보면 두 사람 인생의 전환점이자 걸림돌이 되어 버린다.
여자와 남자는 처음부터 엄마와 아빠가 아니다.
잠재되어 있는 본능 중에 모성과 부성의 일부가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들은 아이에 의해 만들어 지는 존재일 뿐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그래서 누구나에게 부여해 주지 않은 특별한 본능 중 하나인듯 싶다.
결혼 후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다가온 생명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나 임신을 축하해주고, 임신기간 동안 점점 불러오는 배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지만, 아무도 그 후의 일은 이야기해 준적이 없다.
임신 기간에 내가 겪었던 육체적인 불편함과,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그 이후의 긴 시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아무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모두 축하만 해줄 뿐, 현실을 직시해 준 사람은 정말 단 한명도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2시간에 한번씩 배고프다고 깨고, 혹은 낮과 밤이 바뀌어 엄마가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해야하고, 꽤 오랜 시간동안 몸의 밸런스가 돌아오지 않고, 모유수유로 가슴은 망가지며, 튼살과 늘어진 뱃가죽은 되돌릴수 없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던, 언제나 혼자라는 외로움 따위를 미리 언질해 준 사람도 없었다. 하루종일 아이랑 씨름하다 보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가는 적이 많았다. 물론 아이에겐 대화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말을 건네지만, 마치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말은 의미없는 옹알이 이외의 무엇이 있었겠는가. 정말 인간다운 언어로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온 2~3시간 뿐, 그 이외의 20시간도 넘게 나에게 주어진 순간들은 고립감, 무력감을 거쳐 좌절로 돌아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았다.
울기도 많이 울고,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어쨌거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이 옆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의 기억들을
바바라 덕에 죄다 기억해내었고, 바바라의 우울함과 무력감을 공유하며 바바라가 울 때마다 나도 화면을 보면서 같이 울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남편은 조금은 철없고 이해심도 낮은 니콜라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고, 육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들에 대한 책임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으므로, 바바라의 고민과 방황, 결정의 순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생각지도 않은 웃음 코드들이 들어있었다.
바바라와 니콜라가 사랑을 시작하던 그 순간 영화의 제목들로 이뤄진 고백의 시작도 꽤 신선했고 (그런데 고백의 순간 고른 영화들은 비극이었다. 역시 사랑은 비극이라는 은유적 표현인걸까..),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고, 등장인물들도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라는 존재는 한국이나 프랑스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임신하면 피해야 할 사람, 어머니, 시어머니, 아이를 낳은 모든 여자들. 박장대소와 함께 완전 200%의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깊숙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영화에서 이렇게 깊은 공감을 얻게될 줄이야......
마지막 장면에서 까지 난 깨알같은 임신테스트 스틱에 빵 터지고 말았다. OMG!! 바바라, 니콜라! 이 와중에 둘째란 말이냐!!!!!
웰메이드라고 불릴만큼 구성이 탄탄하거나, 프랑스 예술영화의 알고리즘을 강하게 나타낸 영화는 아니지만,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해과 공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일 만큼의 강한 유대감의 연속이었다. 마치 내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고찰은 또 다른 영화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혼이거나, 아이의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들이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때로는 현실따위는 알지 못한 채로 닥치는 미래를 계획하지 않은 채 맞이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 누구도 나에게 출산과 육아의 양면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정말 보고싶었던 영화가 스크린에 걸렸지만, 몇 안되는 상영관 에서도 빠른 속도로 간판이 내려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상영관도 나와 스케줄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스크린에서 만나보지 못했었는데 인터넷에서 뒤늦게라도 이렇게 손쉽게 - 절대 어둠의 경로가 아닌 4천원을 지불한 굿 다운로드! - 내려받아 볼 수 있게 되서 참 기뻤다. 그래도 여전히 큰 스크린에서 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울 뿐이다.
좋은 영화를 어렵게 찾아봐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이해가 안간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대기업의 멀티플랙스가 5개나 있고, 상영관만 해도 40개관은 넘을텐데, 그 많은 상영관에서 이러한 영화를 단 한타임도 상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끔은 화가 난다. 나는 이러한 영화를 보려면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이나 걸려 서울까지 찾아가야 하고, 오전시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는 나는 보고싶은 영화를 놓치기 일수다. 정말 우리나라가 영화계의 발전과 경쟁력을 가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면, 다양한 영화적 취향을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불어 몇 안되는 관람객을 위해 꿋꿋이 이런 좋은 영화들을 상영해 주는 몇몇의 영화관들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전한다.
201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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