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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그리고 이해와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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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앙 2014. 9.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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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전후로 책을 계속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랜만에 책을 잡고 열심히 읽었다.

 

 

이창래 작가의 '척하는 삶'과 샨사 작가의 '바둑 두는 여자'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의 몰입도는 상당히 달랐다.

'척하는 삶'의 경우 도저히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며칠동안 책을 덮었다 폈다 하면서 힘겹게 읽었다. 하지만, '바둑 두는 여자'의 경우 챕터마다 소녀와 남자의 시점이 교차되어 펼쳐지지만 전혀 혼란없이 금세 읽고 말았다.

 

 

'척하는 삶'을 읽고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후, [TV 책을 보다]라는 프로그램도 챙겨 보았다.

'척하는 삶'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닥하타의 시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닥하타는 가해자이다. 하지만 이 책 안에서 닥하타는 가해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기 보다는, 너무나 무감각하게 제 3자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 처럼 자신의 과거를 서술할 뿐이다. 그 안에서 일말의 후회는 있을지언정 뼈저린 반성은 없다.

 

내가 간과했던 것은 두가지이다. 우리는 이미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과 작가는 한국인이지만 어떻게 이런 무덤덤한 중간자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위안부의 참상을 전혀 모르는 외국사람들이 보면, 이 작품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위안부의 실체를 까발려 낱낱이 고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위안부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이지 않은 이 반인륜적인 행동들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미 분노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충격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책 안에서 그려지는 위안부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이야기들의 반복 같았다.

 

그리고 이창래 작가는, 한국인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어 보다는 영어가 더 편하고, 한국인의 정서 보다는 미국에서 자란, 한국사람에게서 조금은 떨어져 한국을 관찰할 수 있고, 그에대해 어쩌면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보편적 시각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나는 미국인이란 그의 위치보다, 한국인이었다는 과거의 어느 부분에만 주목하며 한국인의 정서, 위안부의 참상에 대해 더 지독하게 고발하고, 포괄적 가해자인 그 당시 일본군의 뼈저린 반성의 반성이 응당 그려져야 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하며 읽었기에 가해자의 이 객관적 시각들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부분이 1-10중에 3-6사이였다면, 이창래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던 부분은 아마도 5-8 사이인 느낌. 나의 기대와 화자의 시선, 작가의 의도가 서로 상충하며 간격을 유지한 채 책이 끝나버렸다.

 

 

 

<바둑 두는 여자>의 경우 나에겐 광장의 안개 같은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쳔휑광장에서 서로를 만나, 바둑을 두며 서로의 수를 읽는 두 사람. 그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전황이라는 뿌연 안개 속에서 각자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둘. 전쟁이라는 잔혹한 치열에 동반되는 짙은 관능은 시대의 혼란을 이야기하고, 그 혼란 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허무는 두 사람의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는 느낌이었다.

 

짧게 끊어지지만 오히려 이야기 안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감각적인 문체는 관능의 분위기를 더 부각시켜 주는 듯 하다. 시적인 문장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그 의미를 헤아리기엔 내 깜냥으론 부족하니, 바둑으로 시작해 바둑과 같이 끝난 두 사람의 실루엣과 같은 모습으로 이 책을 남기고 싶다.

바둑을 전혀 알지 못해도, 바둑판을 중심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바둑돌을 한 수 한 수, 서로 주고받듯 남자와 소녀는 챕터별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말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척하는 삶>의 닥하타처럼 주인공들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지나온 과거를 이야기지만, 먼 미래의 현재에서 반추하며 느긋하게 바라보는 과거가 아닌, 이 순간에 바로 앞선, 지금과는 무관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이해와 몰입의 측면에서는 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아쉬운 후반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엔딩덕에 조금은 더 애정할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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