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9
- 할머니, 나 외로워.
할머니, 나 사랑만 받고 싶다고.
- 이 버스 안에 자신이 외롭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몰라.
- 좋은 거야.
- 뭐가 좋아, 내 마음은 너덜너덜하고 내 눈은 짓물렀다고.
- 마음과 눈의 느낌을 아는 것. 그건 참 좋은 거야.
- 마음과 눈의 구성성분이나 요소 같은 것 말이야?
- 소중한 것을 잃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도 '아무 일도 아니에요'
라고 미소짓는 느낌, 저 멀리 언덕을 넘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
그 사람이 웃어주는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애정을 받는 것 같은 느낌,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
를 모아 밤새 태산이라도 쌓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마음껏 누려
야 돼.
홍희정 작가.
앞으로 나오는 그녀의 책들을 열심히 볼것 같다.
이야기는 톡톡 튀거나 신선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난데없이 묵직하지도 않다.
조용한데 편하다. 그냥 참 괜찮다. 라는 말이 나온다.
대학교 친구 율이를 6년이나 짝사랑하는 이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들어주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오전에는 율이네 엄마가 운영하는 슈퍼도 가끔 주고 있다. 이레는 슈퍼에서, '들어주는 회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말들을 들으며 정말 자신이 해야 할 일과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찾아간다.
경장편 분량의 소설 안에서는 많은 인물들과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들어주는 회사'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듣기만 하는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것,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며 율이를 바라보는 것도, 매일 정해진 시간 같은 물건을 사가는 칸트 아저씨도, 무엇보다도 같이 사는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말들을 듣는 모든 것이 이레 뿐만 아니라 내가 이레인것 마냥 그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구덩이'씨의 마지막 이야기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를 듣고, 나도 환호할 뻔 했다고 하면 모든게 다 설명이 되려나..
문학동네 작가상 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심각한 주제의식이 없다는 평들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뭐 내가 누누히 말하듯이, 청춘이란게, 20살 초중반의 인생이란게, 언제나 심각하지만 않은것이 솔직한 현실이지 않은가. 조용하지만 사랑스럽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꿈이 있는 이야기만으로도 난 이미 만족하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덮기 직전,
심사평 뒤로 이어지는 박형서 작가의 '홍희경 관찰기'라는 인터뷰 부분을 읽고..
정말 웃음나와 죽을뻔 했다 ㅎㅎㅎㅎㅎㅎㅎ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