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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A muse. 2012.

映画

by 솔앙 2014. 5. 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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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원작만한 영화는 없었다.
살색가득한 영상으로 홍보를 했어도, 마치 일본 AV와 같은 포스터로 눈길을 끌었어도,
'그래, 영화만 제대로 나와준다면 모든건 괜찮을거야' 하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처참히 무너졌다. 이러한 배우들과 그러한 영상미학을 만들어 낼 힘이 있는데,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관능과 책을 읽는 내내 침조차 삼키기 힘들었던 긴장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책은 이적요의 죽음과 그가 남긴 노트한권에서 시작한다.
고매하고 명망있는 70대 노시인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되는 스토리텔링.
영화의 처음 5분은 이적요의 현재에서 시작된다. 그저 그런 70대 노인의 일상.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지리멸렬함의 연속 가운데 어느날 은교가 나타난다.
핫팬츠와 흰색 반팔 티셔츠. 맨발의 스니커즈.
특별할 것 없는 10대 소녀의 차림과 몸짓에 이적요 시인은 한 눈에 동요한다.
이렇게 책과 영화는 시작부터 다르다.
영화에서 보여진 그 5분의 긴장감에 난 무언가를 기대하며 스크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30대 청년에서 하루 몇시간의 분장을 통해 70대의 노인이 되어버린 배우 박해일.
단 한장면.
70대의 이적요가 꿈속에서 다시 30대의 그가 되어 그의 뮤즈 은교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단 한장면을 위해 박해일씨는 영화 내내 70대의 이적요가 되었던 것이다.
충분했다. 박해일이라는 배우였기에, 이제 모든것을 놓을 수 있는 70대의 이적요도,
욕망의 사로잡혀 꿈 속에서나마 되돌아갈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이적요도,
모두 그였기에 가능했던 묘사 같았다.


솔직히 서지우 역은 생각지도 못한 캐스팅이었다.
쌍꺼풀도 짙지 않고, 키가 너무 커서 단단히 보이지 않는, 30대의 후반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배우 김무열씨가 서지우 역할로 캐스팅 되었을 때, 솔직히 배우 김무열을 바라보는 기대감과 작가 서지우를 바라보는 걱정에 참 궁금했었다. 나이부터 겉모습까지 확연히 다른 그가 어떤 느낌의 서지우가 될지 의문이었다.
책에서 본 서지우는 이적요에 대해 두가지 마음을 품는다.
존경과 질투. 그리고 자기 자신이 처한 현실과 충족되지 못한 재능에 좌절하는 무기력함.
여러 감정과 상황들을 오가며 김무열이라는 배우는 아깝지 않게 서지우란 인물을 표현해 낸듯 했다. 은교를 향한 숨기지 않는 경계심과 동시에 그녀를 향한 육체적 욕망. 그리고 파멸. 그가 표현해 낸 서지우란 인물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
두 남자의 고요한 일상에 파문을 던지며 등장하여 어느순간 깊숙이까지 파고 들어와

부자(父子)같았던 두 남자의 관계를 송두리채 빼앗아 가 버린 한은교.
이 오묘한 뮤즈를 어떤 이미지로 표현해 낼까 참 궁금했었다.
박해일과 김무열. 그 두 남자 사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은교라는 인물의 부담감을 과연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크랭크업의 순간까지도 이름을 제외하고는 얼굴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신인배우. 고등학생이지만 관능적이고, 순수하지만 마냥 순진하지 만은 않은 은교를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연기해 냈다. '은교'의 김고은이 아닌 김고은의 '은교'를 만들어 두 남자가 글과 일상을 위해 외면해 버렸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표면으로 드러내어 결국은 터트려버리고 만 뮤즈가 되었다.

나에게 은교는 몰스킨 노트를 모두 찢어 태워버렸던 조금은 이기적이고 솔직한 감정과 진실이 두려운 아이로 남아있었다면, 이제부터의 은교는 특별할 것 없지만 두 남자의 일생을 결정지어 버린 자신은 인지하지 못한 팜프파탈의 여인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는 70대의 이적요를 조금은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웃음이 나오면 안되는 포인트에 웃음유발요소를 집어 넣고, 70대 노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쉼없이 말하고 있던 책의 이적요라는 인물을 70대 노인은 그럴수 밖에 없다는 영화의 이적요라는 인물로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이적요 시인은 끝까지 살아남게 만들기도 했다. 자존심과 고상함을 지키던 시인은 제자를 죽이려하고 알콜에 찌들고, 무기력한 뒷방 늙은이의 모습으로 남겨 놓으며 살려 두었다. 단지 은교의 뒤늦은 깨달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다지 납득할 수 없는 엔딩에 더 참담함을 느꼈던 것 같다.


영화의 처음 5분 기대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점점 사그라 들였으며,
영화의 마지막 5분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위한 각색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영화를 본 후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남편은 책 2~3장 갖고도 영화 한편 정도는 넉근히 찍을 정도의 활자의 힘이 크기 때문이라 말해 주었지만, 난 최소한의 원작의 분위기와 스토리라인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각색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모든 장면을 100% 담으며 영화를 찍으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원작이 있으니 어떤 모호한 묘사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원작이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같은 감동과 같은 긴장감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말 그대로 원작이지 단순히 모티브만을 따온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적요 시인의 '당나귀'가 더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본 후 난 박범신 작가님의 <은교>를 다시 펴 들었다.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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