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라면.. 그대로 첫사랑의 추억 안에서만 남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사랑의 추억이 실재가 된다면 현실의 괴로움이 보여질테고, 더 이상 순수했던 첫사랑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게되지 못하게 될테니 말이다.
나의 기억. 그리고 다른이의 기억.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해도 어쨌거나 추억속에서만 맴돌 수 있으니 그냥 기억속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게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승민과 서연.
스무살의 풋풋했던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왔지만, 쑥스러움과 망설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서로의 마음 한자락조차 내 보일 수 없었던, 그때의 아련한 추억만으로 남았던 첫사랑.
15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하게 된 두사람이 간직 하고 있던 기억 내지는 추억. 20살. 그 시절에만 한정되는, 이제는 다시 겪을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향수.
이 영화는 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94,95,96,97학번 즈음이 보면 참 공감가는 영화인 듯 싶다.
김동률이 전람회라는 그룹으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후 내 보인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시절. 공중전화로 음성메세지를 남겼던 삐삐를 사용하던 그 때. 테이프를 재생하는 워크맨은 흔했지만 CD를 듣던 CDP는 많지 않았을 때. 왁스가 아닌 무스로 한껏 멋을 낼 때.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아직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른것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그 당시의 향수 속에 좀 더 젖게 할 소재들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실제 96학번인 남편은 영화에 푹 빠져 그들과 그시절의 모습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난 아쉽게도 5년이나 차이나는 학번이어서.. 중학교때의 감성이 그다지 많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그래도 전람회 노래는 가슴이 울렸다.)
2인 1역의 캐스팅은 너무나도 적절했던 것 같다.
농익은 30대의 엄태웅과 한가인은 현실의 자신을 내 보이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왜 '해를 품은 달'의 한가인이 연기력 논란의 정점에 서 있었는지 알게되었다.)
만약 이들이 20대의 그 시절까지도 연기했다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재연 프로그램처럼 보였을 것 같다.
20대의 이제훈과 수지의 연기가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30대와는 확연히 다른 20살의 풋풋함을 잘 표현했기에,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추억과 실재 사이에서 승민과 서연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겉모습이 100% 닮은 것은 아니었지만 15년전과 지금의 이어지는 감성을 잘 표현해 준 네명의 배우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1인. 납뜩이를 연기한 조정석씨.
뮤지컬계에선 이미 이름난 배우이지만,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자신의 위치를 정립해 나가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좋았다. 이 영화에서의 모습과는 또 사뭇 다른 드라마의 모습들도 보면서, 드라마로 진출한 다른 뮤지컬 배우들은 아직 뛰어넘지 못한 것 같은 그 어딘가를 기대하게 해 주었다. 짧은 분량의 출연이었지만, 그 시절 최첨단 유행의 비주얼과 남자라면 누구나 한명쯤은 있을법 한 그런 친구의 역할에서 영화 내내 출연한 그 어느 배우들 보다도 확실한 존재감을 주었다. 이름도 한번 나오지 않고 '납뜩이'라고만 일컬어 지는 그를 보기 위해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스포일러 포함내용~
영화의 엔딩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거시 해피 엔딩인지 아닌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 일 없이 잘 살아오던 삶에 첫사랑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 시절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다짜고짜 현실의 모든것을 버리며 추억속에서 현실로 걸어나온 첫사랑을 택하는 것이 과연 진짜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 둘이 이어지는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아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공감가는 현실적인 이 엔딩이라 다행이라 이야기 하고 싶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을 따른 것 일수도 있겠지만,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나의 현실에 대입해 생각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혹시 모른다. 5년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서연이 결혼과 이혼을 겪기 전, 승민이 사랑을 찾아 미국에 갈 계획이 없었던 그때였다면,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나쁘지 않을수도 있었겠지만, 무모하게 첫사랑만을 좇기에 30대 중반의 나이는 지극히 현실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제목인 '건축학개론' 속에 그다지 사랑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지 못한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집에 대한 감독의 미장센은 알것 같았다.
정릉의 빈 한옥. 30년 넘게 그 집을 고수해오는 승민모의 고집.
완전히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기본 골조 그대로를 유지하며 덧붙일수 밖에 없었던 제주의 집. 하지만 결국 사랑의 완성을 이야기하기에 제목부터 시작한 '건축학개론'의 영화적 의미부여는 조금 약하지 않았던것 아닐까 싶다.
오랫만에 그 시절의 감성안에서 추억을 생각하며 아련함과 애틋한 첫사랑을 떠올릴 수 있었어서 좀 더 마음에 찼던 영화. 꼭 남편이랑 보고 싶어서 혼자 보지 않고 기다렸던 영화. 다 보고나니 둘이보길 잘 했다고 생각되었던 영화. 다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이제는 CDP가 아닌 스마트폰에 mp3파일로 넣으면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삐삐의 음성메세지를 확인하던 나의 그때를 떠올리게 해 준 영화였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면 삐삐시절이 아니라 이미 핸드폰이었음에 웬지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어서 그저 아쉬웠지만 말이다.)
201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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