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한테 거짓말한 거 있어?"
"아니."
"조금 더 생각해 봐."
나는 생각하는 척하면서 잠시 침묵했다. 그때 퓌순은 내 재킷 주머니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에템 씨, 나도 가운데 이름 있어. 뭐 어쨌든, 생각해 봤어?"
"응, 생각해 봤어. 너한테 거짓말한 거 하나도 없어."
"지금, 아니면 최근에?"
"그 어느 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거짓말을 할 상황이 아니야."
"뭐라고?"
우리 사이에는 어떤 이익이나 일 같은 관계가 없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일지라도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거짓말 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진정한 마음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신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해."
"나에 대한 존중심이 빨리도 사라졌군."
"사실 나에게 거짓말을 했으면 하고 바랐어. 왜냐하면 사람은 오로지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을 위해서만
거짓말을 하니까."
"물론 널 위해 거짓말을 하지...... 하지만 네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하지만 원한다면 그렇게도 할게. 내일 또 만나자.
응?"
"좋아."
1권. P.94-95
18살의 퓌순을 사랑한 서른살의 케말은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다.
약혼녀와 퓌순, 모두를 포기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가지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퓌순에 대한 진짜 사랑을 깨달은 후, 그녀를 찾아 헤매고, 다시 그녀를 찾았지만,
다시 찾은 퓌순은 분명 다른 사람인 듯 느껴졌다.
케말을 순수하게 사랑하던 18살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케말은 달라진 퓌순을 알아보지 못한채로 여전히 퓌순을 사랑했고, 사랑했고 또 사랑했다.
18살의 퓌순이 케말에 대한 불신의 싹이 시작되었다 생각하는 저 문장.
1권 초반에 나오지만 밑줄을 긋었다. 앞부분까지 덧붙이면 발췌부분이 넘 길어지니 간략하게!
저 문장이 포함된 에피소드 부분을 다시 읽고나니,
8년간 쉼 없이, 변함없이 퓌순을 사랑했던 케말에 대한 불신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가늠해봤다.
퓌순이 소녀에서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갖게 된 가장 큰 불신의 이유로 어쩌면 케말의 사랑까지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 건 아닐까..
퓌순이 먹다 버린 아이스크림 콘도 줍고,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사이다 병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손이 닿은 스푼과 소금통을 훔치던 케말.
도대체 이 사랑의 끝은 어떤 형태로 맞이하게 될까 싶었는데,
마지막 이야기 이후, 결국 남은건.. 케말은 위대한 사랑을 한, 진실된 남자였다는 것이다.
파묵집안의 오르한씨.
글 너무 잘 쓰십니다. 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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