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 안 했으면 좋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남자애랑 대화할 일은 좀처럼 없다. 맛있지만 너무 작은 과자를 먹는 느낌이다.
아까우니까. 천천히.
조금씩.
부디 더 천천히.
"...... 사랑이란."
갑자기 간나즈키가 중얼댔다.
"응?"
"결국은 소유욕이라고 생각해."
"소유욕?"
"......"
간나즈키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다 또 갑자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야마노우치......"
"왜에."
"야마노우치, 난."
발걸음이 다시 좀 빨라진다.
석양이 몰아치듯 빠른 기세로 저물어 간다. 엷은 어둠에 뒤덮인 비탈길이 두 사람의 모습을 아련히 지워갔다.
"난, 얼마 전에 너랑 걸었던 그 상점가, 거길 지나서 날마다 학교에 가."
"응."
"우리 집은 가게보다 더 안쪽이거든."
"......"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생각해."
간나즈키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멀리 가고 싶다고."
"멀리?"
몸이 오른쪽 왼쪽으로 느릿느릿 흔들린다.
간나즈키는 응, 하고 끄덕인다.
"요코스카 선을 타면, 오늘은 기필코 두 정거정 지난 가마쿠라 역이 아닌 머나먼 곳으로 가버리겠다고 말이야."
"......"
"멀리 가고 싶다, 무엇도 소유하고 싶지 않다. 이런 감정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래서 아까 이야기 말인데, 그 본능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본능인 소유욕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해."
"......"
"난 매일 아침 생각해, 멀리 가고 싶다고. 그런 생각은 나만 하나? 어딘가로 가려고 전철을 탄 사람들...... 그중에서도 어린애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매일 아침, 여전히 같은 역에서 내리고 마는 거지."
"간나즈키......"
"난 그날 아침, 널 전철에서 본 날에도 그런 생각뿐이었어. 입학식 같은 건 개나 줘버려라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네가 버둥대고 있었어."
고야는 눈부신 아침 햇살속에서 멀어져가던 그 뒷모습을 떠올렸다.
고야에게 구름다리 효과를 일으켰을지도 모르는 소년은 여전히 남자 어른처럼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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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그래서 황야는 어땠어?"
갑작스런 질문에 놀랐는지 유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만만찮은데, 너."
두 사람의 눈앞에서 여름밤의 뜰이 바람에 날려 일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든다. 차르르, 하고 어두운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의 머리칼을 흔들고 간다.
"앞으로도 쭉......"
쥐어짜듯 절실하게 유야가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 아아, 또 이목소리다, 하고 고야는 깨닫는다. 이래서 자신은 소년을 말릴 수 없다. 여행을 말릴 수 없다.
"앞으로도 쭉 계속될 거야. 그래서 고야 너인 거야."
"즐거웠어?"
"응. 하지만 내내 생각이 많았어."
유야는 '내내'라는 단어에 힘을 줘 말했다.
"고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어. 그러니까 줄곧 생각해야 했지."
밤바람이 불었다.
'세상이란?
인간이란?
청춘이란?
그리고 음악이란?'
뜰이 자꾸만 더 휘어든다. 시간과 함께 송두리째 어디로 미끄러질 것만 같은 격렬함.
고야는 유야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긴장했지만, 이제야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킁킁, 냄새를 맡는다.
그리운 냄새.
"또 뭐야."
"좋은 냄새."
"아직도 그러고 있어?"
유야가 손을 뻗었다. 고야의 뺨에 손바닥을 댄다. 손바닥은 뜨거웠다. 화상을 입을 만큼. 소년도 긴장하고 있다.
고야는 눈을 감는다. 꽉 감는다.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간다. 요코 아줌마, 동물의 목소리, 물에 뜨는 금붕어, 파란 눈의 루이, 아빠, 친구, 갓 태어난 여동생, 다가오는 졸업...... 엄마를 따르는 꼬맹이처럼 유야의 손바닥만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사랑은 여자를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는 것은 순간뿐,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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