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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주면 다 주는 것이다. / 그 남자의 연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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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앙 2014. 5. 3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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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경은 좀 달랐다.

  계곡에서 아내의 발을 맨 처음 씻겨준 날이 있었다. 발 주면 다 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 발을 주물러라. 그가 들었던 조언은 그런 거였다. 효과는 좋았다. 둘은 급히 친근해졌고 친한 사이는 헤어지기 싫은 법이라 여관을 갔고 자주 가다보니 결혼을 하게 됐다.

  아내의 발은 작고 통통했고 민감했다. 발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만지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발과 발을 맞댄 부분에서 섹스를 끝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항구에 살고 있다. 아내의 발을 가지고 놀려면 비번이 돌아와야 가능했다. 비번 날까지 근무하는 것은 아내의 발을 기다리는 시간과 같았다.

 

- 발. P76.

 

 

한창훈 작가의 소설집을 보다가 격하게 밑줄을 그은 부분.

<발>이라는 챕터의 내용은 우연히 해변가에서 발견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발' 덕분에

온 마을 전체가 기괴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이는 이야기였는데,

난 그런 이야기를 읽다가 저 '발 주면 다 주는 것이다' 부분에서 혼자 '한창훈 작가 만세'를 외쳤다.

어쩌면 이렇게 적절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작가님, 너무 잘 아시는데!!!! ㅎㅎ

 

요즘 모 연재글과 관련해 모 처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발을 만진다는 의미가 참 관능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쉽게 허락할 수 없는 그 어떤 부위들 보다도 손쉽게 눈에 띌 수 있는 곳이지만, 왠지 발이라고 하면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쉽게 만질 수가 없고 정말 친근하고 은밀해야지 터치가 가능한 그런 부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란 신체부위에 대한 그 어떤 로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자의 손으로 발 뒷꿈치와 복숭아뼈로 이어지는 발목이 어루만져진다는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는 전율이 느껴지며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

이 모든건.. 저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역시 '발 주면 다 주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 작가의 99%는 여자이기 때문에, 항상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여자의 판타지를 많이 표현한다. 하지만 너무 그 여성적 성향에 치우치면서 감정을 줄줄 흘리는 책들을 보면, 나도 여자이지만, 이런 이야기 까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하며 책장을 덮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기에 남자의 눈을 통해 보는 사랑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건 참 흥미롭다. 하지만 이 소설은 - 물론 로맨스 부류의 소설은 아니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니 비교하자면 말이다 -  사랑이라는 감정에 치우친다기 보다는,  그 감정안에 한발은 담그고, 한발은 살짝 옆으로 빼서 양쪽을 오가며 적당하게 사랑에 대한 감정의 완급을 조절해준다. 사랑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사랑을 관찰하며 보게 되고, 때로는 사랑을 분석까지 하게끔 해주는 문장들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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