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0-191
클리프 선생님은 실비아 플러스의 작품을 읽으면 매우 우울해진다면서 자기 딸도 이스턴 고등학교에서 미국 문학 수업을 듣느라 최근에 《벨자》를 읽으면서 아주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교무과에 항의하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뭐에 대해서요?"
"따님한테 그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읽힌 거요."
"아니요. 그게 왜 항의할 일이지요?"
"그 소설은 아이들한테 비관주의자가 되라고 가르치니까요. 끝까지 아무 희망도 업고 좋은 날이 온다는 기대도 없잖아요.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인생은 고달픈 거예요, 팻. 아이들도 인생이 매우 험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지요."
"왜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연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기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테고, 각자 자기 마음
에 어떤 화학 작용이 소용돌이치느냐에 따라 인생이란 여정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테니까요."
그냥 재미있게만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에게도 클리프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 말고 바로 그 클리프 선생님이 말이다. 그렇게 책장을 덮는데 한없이 울고 싶어 진다. 난 어쩌면 팻보다 더, 티파니보다도 심각하게 내가 처한 상황을 직면하지 못한 채 고개돌려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팻과 티파니는 나의 눈에는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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