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얇은 책을 오전 10시에 읽기 시작한 책을 12시간도 넘겨 새벽 2시에 끝냈다. 꾸벅꾸벅 졸아가며 단 2곳에 밑줄을 좍좍 긋고는.. 결국은 책장은 끝까지 덮고 잤다. 읽다가 다른 일 하다, 읽다가 아이랑 놀다, 읽다가 밥을 먹다.. 왜 끝까지 읽어봤자, 이 사람들은 그냥 이대로 끝날 것 같아서, 참 그저 그런 삶이구나, 하는 마음에 쉽게 끝을 보고 싶지 않았다. 책장을 덮더라도 그들의 정답 없는 삶은 여전할 테니 말이다.
이제 한글을 제법 읽는 아이가 제목을 읽고는 왜 이런 제목을 갖고 있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쁜 피>
좋고 나쁨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피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 속에 흐르는 빨간 액체.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로 이루어져 있어 있으면 살 수 있고, 없으면 살 수 없는, 이런 생물학적 이야기 말고, 사람이 살아가야 하니까, 때로는 이기적이고, 어쩔땐 무심하다가도 결국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는 자기위안에 빠진, 지금 이 순간의 나도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좋다기 보다는 나쁜, 내 몸속 전체를 원하지 않더라도, 매 순간 쉬지 않고 휘감아 돌고 있는 피, 삶, 생활의 이야기. 정답은 없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지 못해도, 대충 얼버무려 말할 수 밖에 없고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상황과 의미의 분류에서도 결국은 아..알았어.. 하고는 단박에 이해가 될 수 있는 강렬한 느낌의 제목은 아닐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더 이상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제목은 없네.. 하고 생각될 만큼 말이다.
김이설 작가님 이야기는 <환영>에서 이미 보았듯이 정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같이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야기들 같다. <환영>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지없이 떠올랐다.
문장이 어렵지도 않다. 나에게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마치 'A는 A이고, B는 B일뿐인데..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고는 만다. 나의 생각 같은건 묻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야기 할 뿐이다. 그래서 더 좋다. 그냥 이야기하고 있어도 나는 알 수 있어서, 날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그녀의 무심한 문장들이 더 마음에 든다.
P.118-119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였는데, 나에게는 특별하게 들렸다.
"별 얘기도 아닌데 쑥스럽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지 뭐."
그 고만고만한 일이 나에게는 힘들게 애쓴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누구에게는 치열하게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들이었다. 그 사실이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