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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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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앙 2014. 5.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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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지 꼭 1년이 되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마 10번 이상은 정독했던것 같다. 읽을때마다 수 많은 감정에 휩싸이며 쉽게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중요한 부분은 모두 머리에 담고, 대사들 하나하나도 모두 가슴에 담고 싶은 책이다.

내가 난다의 일기 리뷰를 쓰면서 <내인생최고>라는 말머리는 보기 힘들것이라 장담했었는데.. 이 책 같은경우는.. 그런 범주의 책이 아니다. 베스트를 꼽을수 있는, 순번을 정할수 있는 책이 결코 아니다. 그냥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제목 만으로도 최고라는 말로 이야기하기엔 넘 작은,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 되어 버렸다.

 

10번이 넘는 이야기를 읽는 시간만큼 나는 진솔이었다.

진솔이가 되어 꽃마차 원고를 썼고, 청취자들의 전화를 받고, 방송국과 음반실을 들락거리며 건PD와 홍엔지를 만나고, 선우와 애리를 만나고 이필관옹을 만났다. 진솔이에게 너무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건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에게 느낀 일말의 실망감.
그리고 버릴 수 없는 마음들 등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공존하며 갈등하고 충돌했다.

 

나에게는 내추럴 본 나쁜남자 이건PD.
조용히 살고 있던 진솔의 삶에 성큼 다가와 그녀를 흔들어 놓는다. 아무렇지 않게 스무디를 사달라고 하고, 거절할 수 없는 말로 만나달라 하고, 자신에게 진솔은 diary 같은 존재라는 애매모호한 말들을 하며 진솔의 감정들을 자신으로 향하게 만든다. 한껏 진솔을 사랑이라는 감정에 들뜨게 만들어 놓고, 결국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진솔에게 그 마음이 지나가는 바람일지 모른다고, 자신의 마음조차 들여다보기가 익숙치 않아 무엇이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건 이라는 남자.
그럼 지금까지 진솔을 향한 그의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익숙하지 않은 사랑을 먼저 눈치채지 못한 건지. 진솔에게 다가간건 그냥 동료와 친구의 감정에서 더는 벗어나지 않는 것 뿐이었는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럴거면 진솔의 삶에 처음부터 마음 한자락도 들이밀지 말지...... 한껏 뒤흔들어 놓고는 모르겠다고 발뺌하는 건이 미웠다.

 

건의 애리를 향한 마음은 사랑이었을까.
그래, 10년전에 시작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건이 가진 애리에 대한 마음은 사랑 보다는 지켜주고 곁에 있어주고 싶은 동정 내지는 선우의 마음에 동화되어 버린 퇴색된 감정 그 이상은 못될것 같다. 진솔이 있음에도 그녀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애리에게 내 뱉은 그 충동적인 말은 건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애리에 대한 마음이 결코 사랑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사랑했다면, 그렇게 애리의 감정을 무시하진 못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솔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 아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엉큼한 놈 아닌데 진솔의 손을 잡고, 어깨에 손 올리고, 끌어안고, 하루종일 만졌다는 그의 솔직한 말. 이런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하는 잔뜩 자조섞인 그의 말. 진솔과 잘 지낼때가 제일 편하고 좋았다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수도 없을 것 같은 어설픈 고백. 뒤늦게서야 그의 말처럼 지나가는 바람이었을 뿐인데 사랑이라는 자신이 있었다는 진솔의 말에 화를 내던 건의 진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빈소에서 내내 진솔만 떠올렸다는 그의 생각.
그의 마음은 진솔에게로 처음부터 흘러가고 있었는데, 건은 몰랐을 뿐이었을 테다. 건의 감정이 진솔에게 닿아서 진솔은 미리 알아챘었는데, 건은 돌려받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추럴 본 나쁜남자. 자신의 마음보기에 솔직하지 못한 남자. 그런 채로 진솔에게 너무 가까이간 감정적인 남자. 그런 힘든 남자였음에도 진솔은 건을 사랑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대사는 역시 긴 세월을 살아온 이필관옹과의 대화중에 나온다.

 

P.354

 

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며,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지 않아요.

보태서 써야한다. 내래, 저 사람을 보태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라우. 저 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내래 보태줘서리 쓴다... 이렇게 말이디.

나도 이 이야기를 읽으며 진솔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며 당연한듯 그 사람이 나에게 맞춰지길 바란다. 진솔도 건의 애리를 향한 감정들을 알고 시작했음에도 내심 진솔 자신에 건이 맞춰지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솔만의 남자가 되어주길, 진솔만을 바라봐 주길 말이다.

하지만 건에게 진솔이 바래야 했던건 건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제는 애리를 대신 진솔을 택하는 마음이 아니라, 애리를 바라봤던 과거는 그대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한 채, 그 감정들 이에 진솔의 현재를 덧입혀 가기를 바래야 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진솔이로 채워져 가기를, 그렇게 조금씩 바뀌기를 바래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건은 혼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맞춰 나가는 사랑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진솔도 자신이 먼저 사랑한다 고백했으니 그런 건을 기다려 줬어야 했었다. 원래 사랑은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니까......


양떼같이 힘든 우리의 삶에 단 한번만이라도 꼭 사랑이 전부 같아서 미칠것 같은 사랑을 만난다면 행복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한번이 아니라 몇번도 가능할테지만, 정말 '미치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랑이라면 한번 뿐이라도 충분할 것이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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