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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슈. 레 페슈. /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本/引く

by 솔앙 2015. 9. 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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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벽돌로 한 번 내려치자 칼 끝이 캔에 구멍을 낸다. 그러기 무섭게 그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향은 몹시도 감미로워서, 정말 충격적일 만큼 감미로워서 그는 기절이라도 할 것만 같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페슈. 레 페슈. (복숭아. 복숭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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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번째로 칼을 내리치고, 금속 뚜껑을 갈아 뒤집어 연다.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캔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담그고는 촉촉한, 부드러운, 미끄러운 것을 들어 올린다. 그런 후 그도 똑같이 한다. 첫 번째 복숭아가 그의 목구멍 너머로 사르르 넘어가는 것이, 정말로 황홀하다. 마치 그의 입속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들은 복숭아를 먹는다. 시럽을 마신다. 손가락을 캔 안에 넣고 빙 훑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두 개의 캔 중에 마지막 남은 캔의 뚜껑을 땄을 때, 그 안에 달콤한 복숭아 절임이 들어있었던 것을 알게된 그 순간.

비록, 마리로르가 파리를 떠나 에티엔 할아버지 집에서 먹은 마네크 부인의 복숭아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에 만난 캔 안의 복숭아가

순간의 두 영혼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는 구원처럼 느껴져, 계속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안에 갇힌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이토록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라니.

인물들을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딱 선을 그어 규정짓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해 준다.

그저 인물들에게 집중하면서, 잘 맞물려가는 톱니바퀴 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열심히 돌아가다 결국 보보텔거리 4번지 그 집을 향해,

북극성처럼 반짝이는 에티엔 할아버지의 라디오 전파를 향해, 이야기의 화살표가 한 곳에 모아진다.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이야기와 문장이 모두 나를 사로잡았던 책.

오랫동안 마리로르와 베르너, 에티엔 할아버지, 마네크 부인. 모두를 기억할 것 같다.

 

 

 

눈을 떠요. 그리고 그 눈이 영원히 감기기 전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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