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신기한 경험, 내지는 충격이었다.
대사 한 마디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가고,
그들의 손짓과 몸짓, 표현의 부드러움과 격렬함 사이에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순간을 돋보이게 하는 어떤 음악도 없고, 장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효과음도 없다.
움직이는 소리, 서로가 맞부딪치는 소리, 발자국 소리, 숨소리.
그 어떤 인공적인 소리들을 모두 배제한 채, 날것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준다.
새로운 방식의 무성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대사만 없을 뿐이지 (수화로 하는 대사는 알아듣질 못하니, 언어로 주는 정보는 없는거나 마찬가지 같다.)
그 대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많은 것들 덕분에 그다지 답답한 영화는 아니었다.
대사나 자막이 없다는 건 알고 갔지만, 처음 30분정도는 당황했다.
내가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어야 할지 많이 고민하면서 스크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레 그런 걱정들을 다 내려놓고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굳이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가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엔딩에서 결국 나는 이들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분명 큰 소리였음에도 미동도 없는 그들의 모습에 혹시 주인공의 판타지는 아닐까 순간 착각하기도 했었다.
내용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영화를 봤다.
(요즘엔 항상 백지의 상태로 영화를 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누구의 감상위의 얹는 감상이 아니라, 그냥 나만의 감상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난 조금 더 따뜻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포스터랑은 다르게.. 전혀 다른, 마치 김이설 작가 소설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표현하는 방식도, 표현하는 소재도, 이야기의 기조도 모두 다르지만,
'나쁜피'나 '환영'을 본 이후로 김이설의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을 좋아하듯,
나는 '트라이브'도 본 그대로, 고요하지만, 적나라하고 강렬하게 보여준만큼은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감독의 단편영화들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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