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I'll wait for you.
Come back, come back to me.
원작 <속죄>를 읽으면서 내가 영어를 좀 잘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탈리스 부인이 브리오니에게 '아찔할 만큼 인상적인' 소설이란 평을 내놓으며 어떤 단어를 썼는지-stupendous 란 단어였던 것 같다-, 세실리아가 로비에게 '사랑해, 기다릴게, 돌아와..' 라고 이야기한, 편지에 글로 남긴 이야기는 어떤 단어였을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키이라 나이틀리의 목소리로, 제임스 맥어보이의 멋진 영국식 억양으로 소설에서 궁금했던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영화는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부분적으로 구성의 시각이 차이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조차도 잘 맞물리는 시퀀스로 인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러닝타임의 제한으로 인해 생략된 부분들 - 세실리아가 신경질적으로 드레스를 고르던 부분이나 탈리스 부인의 두통에 관한 이야기들 -이 있어 아쉽긴 했지만, 감각적인 영상과 아마도 원작자인 이언매큐언이 의도했던 화려한 저택과 전쟁터의 강렬한 대비, 기저에 담긴 우울함과 불안들을 영상으로 충분히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과 음악이라는 영화적 장치들 또한 원작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한 극도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오프닝에서 타자소리와 어우러져 브리오니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그 아이를 음악으로 표현해 준 <Briony>와 그녀를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브리오니 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세실리아의 물 흐르는 듯한 초록색 드레스는 폭풍전야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곧 들이닥칠 혼란을 피할 수 없는 세실리아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 했다. 초록색 드레스. 초록색. 편안함과 평온함을 느껴야할 색상의 드레스를 입은 순간이 삶을 소용돌이째 삼켜버리는 순간이 되니 말이다.
원작을 모르고 봐도 좋았을 영화, 원작을 읽고 봐서 더 좋은 영화. 어느쪽을 선택하던 나에게는 멋진 영화였을테지만 말이다. 원작의 감동이 이렇게 영화로 이어지는 걸 지켜보고 몸소 느끼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정말 가슴에 남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군복입은 모습이 왜 이렇게 눈에 익고 낯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검색하다 보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왔었다고 한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멋진 남자를 잊었던 걸까? <비커밍 제인>도 그 다음 봐야 할 영화로 선택 해 놨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이 미묘한 분위기.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은 아니지만, 고급스러운 자태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고급스러움은 절로 아름답다는 탄성을 자아낸다.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로 뽑힌, 초록색 드레이프 새틴 드레스도 키이라 나이틀리가 입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올해는 조 라이트 감독이 영화화 한 <안나 카레리나>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거장의 고전과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길지 더욱 더 기대가 된다.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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