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백일홍 같이 색바랜 그녀의 삶은 애달프고 서럽다.
손끝에서 자연스레 영그는 그녀의 시구들은 당대에는 인정받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철저한 유교사상의 그늘에 가려져 단지 여인으로서의 삶만을 강요당하던 그 시대의 그녀는 유려한 시를 적는 문장가가 될 수 없었고, 타고난 예술혼 조차 자유로이 펼치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열다섯 까지의 그녀는 시대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인을 하여 만난 남편이라는 사람과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담기에는 버거운 소기들이라 그녀가 차고 넘침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매하고 단아한 그녀의 성정도 그 상황 속에서 오랜시간동안 버티며 모질게 이겨내기란 힘겨웠을 터. 단지 시대만을 탓 하기에는 그녀의 안타까운 재능이 한없이 서글프다.
<제 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라는 타이틀보다, 이제 팔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것도 스스로가 여성인 작가. 그래서 누구보다 난설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난설헌의 시를 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작가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인생을 살아내오듯 시를 써 내려간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그 여인을 다시 이 세계로 끄집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을 또 다른 여인의 펜 끝. 그리고 그 두 여인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공허한 마음과 아픈 시선으로 책을 읽는 내내 지켜본 같은 여인인 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지만, 여자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그녀들의 삶은 나의 내면에 잠재된 의식안에서 일렁이는 너울처럼 맴돌다 한순간 속절없이 휩쓸려 버리듯 전혀 상관관계 없는 지금의 내 모습안에 투영해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탈고 했을 당시 2400장의 원고지는 1권의 분량에 맞게 수정작업을 거치며 1400장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그 안에 담기지 못한 1000여장의 글들이 문득 서러워진다. 어쩌면 잘려나갔을 지도 모르는 난설헌의 또다른 이야기들, 겨우 스무일곱해 만을 살다 간 그녀의 진짜 이야기들 일지도 모르는 그 부분들이 결국은 또 세상빛을 못보는 구나... 하는 괜한 안타까움의 편린이 이어진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1000장에 담겼었던 그 이야기들이......
언젠가 강릉에 위치한 난설헌의 생가에 가게 된다면, 백일홍이던 해당화던 부용화던 그녀가 어여뻐했던 예쁜 꽃으로 정성껏 화관 하나 만들어 애달프고 서러웠던 그녀의 시구가, 그녀의 삶이 그래도 아름다웠었노라고, 그래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하염없이 되새기며 부러워 하고 있노라고 가슴 가득 위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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