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집에 왔더니 자꾸 잠이 쏟아져서,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
생각없이 뭘 보다가, 제 버릇 개 못주고 책을 주문했네. 컵까지 알뜰하게 주문했어.
어쨌거나 그렇게 뻘짓하다 발견한 이 인터뷰!
한동안 열심히 시티즌유의 책 2권을 밑줄그으며 독파했는데,
작년 11월의 인터뷰가 그 책 2권의 엑기스 같은 느낌이다.
사랑해요 시티즌유!
영업기밀을 20년 전에만 알려주셨어도, 제 삶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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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말은 어떻게 다른 건가.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글도 그렇게 쓸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말과 글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말을 명료하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글도 그렇게 쓸 수 있다. 다만, 말은 글로 치면 초고를 수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발표하는 것과 같다. 초고를 깔끔하게 쓰는 사람이라면 말도 잘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번 고치고 다듬어서 좋은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말을 글만큼 잘하지 못할 수 있다.
-논리적인 글에서 ‘개성적’인 문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글 바로쓰기' 대로 글을 쓰면 쉽고 명료해지는 대신 글이 다 비슷비슷해질 것 같은데.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이오덕 선생이 주장한 대로 쓴다고 해서 개성 있고 훌륭한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못나지는 않은 글이 되는 건 확실하다. 기본을 갖춘다는 것이다. 각자의 스타일 또는 문장의 개성은 이 기초 위에 각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상(紙上)논쟁이 벌어졌는데 상대가 무논리와 비약으로 무장했다. 이런 상대와는 어떻게 싸워야 하나.
▶그런 사람과는 글로 싸울 필요가 없다.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는 정도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최대치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하게 되니까. 진지한 논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면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과학, 철학, 역사 등의 분야에서 읽기 쉬운 책들도 많이 발간되지만 지식인 중에서는 아직도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는 계급의식도 한 가지 원인이라 생각한다. 문명이 생긴 후 오랜 세월 동안 문자는 극소수 특수계급 구성원들만 사용했다. 대중교육이 이루어지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20세기 들어서 비로소 만인이 문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유통시키는 것은 더 큰 특권이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기술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글을 유통하는 것은 지금도 극소수만 누리는 특권으로 남아 있을 거다. 교수, 언론인, 등단한 작가, 부자들만이 인쇄와 유통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문자를 독점한 특수계급은 대중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말과는 다른 글을 썼다. 말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쓰는 것이니까, 말과 거리가 먼 글을 써야 그 특별함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21세기 정보통신혁명의 시대에 그토록 난해하게 글을 쓰는 것이 혹시 이러한 문화적 특권의식 또는 계급의식 때문은 아닌지 글 쓰는 사람들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보다 작가 유시민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은가. 그렇다면 이유는.
▶그야, 내가 정치를 하지 않고 글쓰기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고 글은 계속해서 쓸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작가였던 정치인’이었지만, 지금은 ‘정치를 한 적이 있는 작가’다. 그러니 작가라고 하는 게 맞다.
-글쓰기에서 맞닥뜨리는 문제 중 중요한 것이 표절문제다. 표절의 기준, 표절을 피하는 방법, 올해 6월 있었던 신경숙 표절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 등을 말해달라.
▶표절 문제는 복잡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남의 것인 줄 알면서 내 것처럼 쓰는 게 표절이다. 글 쓰면서 ‘이건 출처를 밝히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면 그 이야기를 하거나 표시를 하면 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했거나 실수로 출처 표시를 빠뜨린 경우, 누가 문제를 제기하면 경위를 밝히고 인정할 것만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 표절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이 밝혀지면 그 사람이 대응하는 것을 보고 평가하면 된다.
표절은 평판과 명성에 관한 문제다. 신경숙 씨가 제일 아프게 돌아봐야 할 것은 15년 전 어떤 평론가가 미시마 유키오 작품을 표절했다고 지적했을 때 그 근거와 내용을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도 무시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글 쓰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게다가 남편이 다른 작가의 표절 의혹을 냉정하게 다루었던 문학평론가인데, 그렇게 한 것은 큰 잘못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혹은 그 외 고종석, 김훈 등 글 잘 쓰는 다른 작가와 자신의 글쓰기를 서로 비교한다면.
▶내 글을 다른 분의 글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고종석이나 김훈 같은 소설가들은 글을 쓰는 이유가 나와는 다르다. 그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글을 쓴다.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글은 예술품이다. 남들이 알아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정치적 글쓰기’를 한다. 조지 오웰의 견해를 빌리자면, 정치적 글쓰기는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 글을 쓰는 것이다. 내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예술품이 아니다. 단지 의사소통을 위해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남들이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는 쓰레기다. 도구를 예술품과 비교해서 우열을 따지거나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 이것이 조지 오웰의 로망이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한 사람의 언어구사 능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는 단순히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인지하려면 언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언어라는 그릇이 없으면 생각과 감정을 붙잡을 수 없다. 생각과 감정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어휘와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데, 그게 단지 표현을 못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할 수도 없는 거다. 어휘와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 단계의 논리적 추론이 필요한 경우, 서로 다른 사회현상 사이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지휘하면 어떤 조직이든 다 망한다. 가족, 친목단체, 기업, 공공기관, 국가,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한테 무슨 일을 맡길 때는 그 사람이 말과 글을 제대로 쓰는 사람인지 똑바로 살펴보기 바란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생기는 비극과 불행은 모두 일을 맡긴 사람의 책임이니까.
출처 / 전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51126/75027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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