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그 날은.
9시 40분부터 아이 학교 참관수업이 있는 날 이었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나는,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여느날 처럼 뉴스를 확인했다.
9시즈음부터 뜬 속보.
진도 앞 바다에서 제주로 향하던 배가 좌초되었다고.
그 배는 내 동생이 타고 수학여행에 갔던 배고, 우리 부모님이 제주도 산행 다녀올 때 탔던 배였다.
(정확하게는 오하마나호 였지만, 그 때 나는 노선이 같으니 같은 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배가 얼마나 큰지 잘 알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 큰배가 쉽게 가라앉겠어? 좌초되었어도 금방 쓰러지는 배가 아니니 괜찮겠지.
아이 참관수업을 마치고, 엄마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는데 생각이 나서 다시 핸드폰을 열어봤다.
'학생 전원 구조' , '전원 구조' 이런 속보들이 떠 있어서, 그제야 알았다.
아, 내 동생 수학여행 갈 때 처럼 아이들이 타고 있었구나. 전원 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네.
집에 돌아와서 TV를 켜고 속보를 시청하는데, 자꾸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원구조라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그 와중에 사망자가 확인되었다는 기사도 뜨고,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계속 방송되고 있었다.
오후 1시 즈음.
TV에서는 계속 몇명 구조, 몇명 추가구조.. 라고 자막이 뜨는데, 구조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였다.
지인들과 메신저로 계속 이상하다고, 뭔가 잘못된것 같다고, 사람이 너무 적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잘못된 이야기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
지금도 참 끔찍한건, 그 배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배 안에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집에 앉아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그들이 그렇게 물 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죄책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들을 기억하면서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기력함을 준 가장 큰 원인.
이제 열살짜리 아이도 그 날을 기억한다.
학교에 돌아오니 집에 TV가 켜져 있어서, 자기가 엄마한테 엄마가 웬일로 TV를 보냐고 물어봤다고.
배가 가라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했다고. 그래서 TV를 틀어놨다고 했다는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오늘이 그 1년째 되는 날이라고 알려주니, 아이도 시간이 참 잘가네.. 라는 애늙으니 같은 말을 한다.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잊자고 하는 사람들이있다.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일이라, 내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면, 그러기가 쉽지 않은 일일텐데.. 다들 그 일이 내 일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 가족이 탄 세월호가 그렇게 바다로 가라앉아 버릴줄은 몰랐으니.
여전히 배는 그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고, 9분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는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을테고,
안산의 합동분향소에는 고인들의 영정사진도 그대로, 진한 국화냄새도 그대로일 것이다.
1년동안 우리는 하나도 변하지 못했고, 한바퀴를 돌아 다시 4월 16일이 되었음에도 참담한 마음은 여전하다.
1년동안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많았음에도, 하나도 하지 못했다.
못한걸까, 안한걸까.. 에 대한 의구심에 더욱 슬픈 오늘은 다시 4월 16일이다.
5월에 1000만인 서명을 받으러 나갔어요. "서명 부탁드립니다" 라고만 말했는데,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저희 오빠가 세월호 참사로 죽었스빈다.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하고 나도 모르게 외쳤어요. 사람들이 놀라서 서명해주는데, 이 광경이 너무 슬펐어요. 솔직히 멀리 나가기 귀찮고 거리로 나가더라도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만, 이렇게라도 오빠를 위해서 뛰어다녀야겠다고 생각해요. 국회에서 자든, 팽목항까지 걷든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4월 16일이 다가오니까 여러 행사가 많아서 바빠요. 국회, 분향소, 공원... 우리를 생각해서 고생하면서 만들어주신 행사니까 매우 감사해요. 몸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한테 다 힘이 되는 일이니까 슬퍼도 견뎌야죠.
궁금해요, 왜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걸까. 나빠요, 왜 그랬는지. 왜 배를 출발시켰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그 지위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건지... 한 명도 살리지 못했으면서 지위를 탐내는 건 무슨 배짱인지 이해할 수가 업서요. 오빠가 죽은게 실감나지 않아요. 혼란스럽기만 한데 1분만이라도 좋으니 오빠가 제 앞에 나타나면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일러주고 싶어요.
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동생 김예원양의 인터뷰 중. 시사인 395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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