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과연 감독이 무얼 이야기하려 한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났지만 남는게 없는 영화.
김대우감독의 각본을 참 좋아하는지라 이번 영화도 어느정도 기대를 하고 봤다. 정사의 파격적인 설정도 좋았고, 음란서생의 해학 가득한 이야기도 좋았고, 방자전의 원작 비틀기도 너무 좋았었기에, 김대우 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기대했었을지도 모른다.
1969년 군인 관사라는 한정적 공간. 전쟁영웅 대령과 부하직원의 부인이라는 부적절한 관계. 그 제한적 공간에서 둘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끝은 과연 무얼지 참 기대하면서 봤는데, 밋밋하다 못해 지루함까지 느꼈다. 러닝타임이 그렇게도 길줄이야.
우선 설정이 너무 잡다하다.
진평의 설정은 전쟁영웅과 그 트라우마, 그리고 가장 큰 클라이막스를 위해 필요로 했던 계산된 장치라 쳐도 가흔의 설정은 너무나도 얽히고 설킨 느낌이었다. 경대위와의 관계도 그렇고, 친정엄마의 관계도 그렇고.. 어느하나 명확한 설명 없이 뭉뚱그려 펼쳐놓으니 가흔의 성장배경과 그에 따른 그녀의 생각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들 중에는 <만추>처럼 그다지 배경설명 없이, 주인공들의 과거에 대한 지나친 묘사 없이 현재에만 집중해도 완벽하게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분명 감독이 가흔에게 주입하려 했던 모종의 이미지가 그녀의 성장배경에서 풍겨져 나와야 했었을 것 같은데 짐작도 하지 못하게 시작해 놓고, 중간중간 툭툭 힌트를 던지기만 하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가흔은 왜? 라는 커다란 의문이 지워지지 않게끔 말이다. 새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깔끔한 마무리가 없다 느꼈다.
영상미에도 집중하려다 만 느낌이랄까.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많은 영화들에서 이미 보여준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의 반복이 여러 프레임에서 나온다. 장마철의 쏟아지는 비, 새벽의 안개, 핏빛을 가득 담고 흐르는 물.. 그냥 지루하고 식상한 특별할 것 없는 영상들도 결정적으로 주인공들과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주인공들의 연기는...... 정말 두 주인공은 조여정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두 주인공들만 등장하면 어색해지는 분위기 앞에 왜 내가 답답함을 느껴야 하는 건지. 베드씬도 어색하고, 대화하는 장면도 어색하고, 뭘 해도 어색한 남,녀 주인공. 심지어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의 그 긴장감 높아지는 그 순간, 분명 울음이 나와야할 타이밍인데 송승헌씨 얼굴보고 웃음이 나온 나는 어떡해야 하는거지... 정말...?
두 주인공에 비해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연기의 완급조절을 제대로 해낸 조여정씨가 있기에 그나마 연기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구나 할 정도였다.
이 영화의 엔딩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런지 그것 하나 궁금하기에 극장에서 끝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끝나고 직원이 앞에서 설문조사 하는데, 0-10점까지 별점 주려면 몇 점 줄거냐고...
내 앞의 여자는 4개, 나는 3개반, 내 뒤의 남자는 3개 였다.
나 혼자만 이 영화를 별로라 생각하며 본게 아니구나 싶었다.
201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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