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다 본 후,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러닝타임 90분동안 진이 빠질대로 빠졌고, 내 주변의 공기들 속에도 산소농도가 옅어져 가는 긴장을 느꼈고,
나홀로 광활한 우주에 남아 떠도는 느낌이었다. 결국 엔딩타이틀이 다 올라가도록 나 혼자 극장에 앉아 큰 숨을 몇번 쉰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는 감동적이었다. 이 영화는 SF 영화도, 재난 영화도 아닌, 어떤 분류로도 나누지 않은 채, 그저 사람이 살아감을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하고 싶다.
Gravity. 중력.
영화 내내 중력을 느낄 수 있던 겨를은 한 순간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항상 걷고있는 이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중력이라는 현상의 힘에 대한 가치 만큼은 절실히 필요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금 이 순간에도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소리, 호흡, 사람의 체온, 관계, 물, 흙 모든것을 돌아보게 해준다. 딸아이가 죽은 후 출퇴근 시간엔 라디오만 틀어놓고 무의식적으로 운전만 한다는 닥터 스톤, 끊임없이 불필요한 수다를 내 뱉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당신은 살아야 한다고 외치던 믿음직한 맷.
지구와의 교신도 끊어지고 우주왕복선도 부서져버려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 우주유영을 통해 아무일 없지만 계속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게 해 준다. 끝이 없는 우주에서 우리가 두 발 뻗어 디디고 서 있는 지구는 정말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며, 그 속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보이지도 않는 나의 존재는 작을 뿐이지만, 그 존재를 내가 의식하는 것 만으로도, 그래서 지금 내가 호흡하고 있는 산소가 느껴지는 것 만으로도, 값진 내 삶을 똑바로 마주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간신히 영화관 밖에 나와 눈부시게 환한 햇빛을 보는데, 그들이 우주에서 봤던 갠지스 강을 비추던 찬란한 태양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 살아간다는 건 그 따스한 빛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찬란한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Life of PI>에 이어 두번째로 3D IMAX 영화관을 찾았다. 안양에는 없어 수원까지 가서 조조할인을 받았음에도 13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영화를 봤지만 충분히 만족했고, 실제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준 최강의 영상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4D로 한 번 더 보고싶다고도 생각했다. 이 영화는 반드시 IMAX를 통해 빈 틈 없이 눈에 보이는 것 가득 우주를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올해 본 영화 중에 영상과 내용 모두 나를 만족시킨 영화로 가장 기억될 것 같다.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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