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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一代宗師. 2013.

映画

by 솔앙 2014. 5. 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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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느리고 대사도 많지 않다. 많지 않은 대사들 마저도 시적이며 함축적이다. 북경어와 광동어를 넘나들며 1930년대 중국 무림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도 같다. 이쪽 세계의 무슨 문파니, 무슨 권법이니 하는 것들은 완전 문외한이니.. 좀 아는 사람과 영화를 봤다면 더 재밌었을까? 그림 그려지듯 흐르는 장면들도 많고, 인물간의 관계에 대해 세세한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음악도 잔잔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일들도 많지만.. 그 무엇을 차치하고라도 영화의 아름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쿵푸가 그렇게 선이 아름다운 무술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톤다운된 화면으로 비춰지는 배우들의 말간 얼굴과
처음 들어본 쿵푸의 세계들에 관한 이야기, 비내리는 거리, 눈이 쏟아지는 그믐날 밤. 모두 아름다움에 취한 화면들이었다.
 
특히 그 아름다웠던 수많은 시퀀스들 중에서 두 장면은 정말 강하게 오래동안 기억될 것 같다.
 
 
1. 쿵푸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오프닝에서 엽문이 이 말을 하고 시작한다. 수평과 수직.
바로 나오는 화면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속에서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손과 발의 유려한 동작들. 죽음을 뜻하는 수평과 살아서 서 있음을 뜻하는 수직일 수도 있지만, 그 장면 만큼은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직적 모습과 허공을 가로질러 상대방을 공격하는 손과 발의 수평적 모습들을 교차해 대비시켜가며 쿵푸의 본질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엽문의 모자에 튀기는 빗줄기 하나들도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2. 돌아보기.
궁가의 마지막 비법인 돌아보기..를 되찾기 위한 궁이와 궁이의 아버지이자 사부를 죽인 마삼의 싸움.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다. 눈이 흩날리듯 내리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펼쳐졌던 두 사람의 싸움은, 그 조차도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복수를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지에 대해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라 슬픔 안에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궁이의 모습. 그리고 결연하게 복수를 단행하는 눈오는 날의 밤.
바로 이 장면을 통해 나는 수도 없이 봐 왔던 장쯔이라는 배우가 내가 알고 있던것 보다 더 좋은 배우였고,
얼굴, 눈빛, 손끝까지 아름다운 배우라는 걸 새로이 느낄 수 있었다. 흩어지듯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보이던, 눈빛은 차갑고 입매는 굳어진 그녀의 얼굴 덕에 그 이후 궁이라는 여인의 운명이 좀 더 안타깝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은 이 영화.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화양연화로 정점을 찍고 더 이상 왕가위는 없다는 사람들을 향해 아직 죽지 않은 왕가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참 반가웠던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왕가위의 새로운 스타일을 좀 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과거를 떨쳐내고 미래로 나가는 엽문처럼 왕가위가 다시 이야기할 그만의 영화들은 또다른 새로운 시작일테니 말이다.
 

 

20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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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마시면서 무심코 리뷰봤다가 카페에서 눈물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강명석아저씨의 칼럼..
영화 본 분들이라면 꼬옥꼭 읽어보시길!!
 
 
 
 
 
[강명석 칼럼] <일대종사>, 쓰러진 모든 사람들에게

* 영화 <일대종사>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궁이(장쯔이)의 인생은 늘 겨울이었다. 중국 최고의 무술가였던 아버지에게 무술을 처음 배운 것도, 아버지의 제자이자 원수 마삼(장지림)에게 궁씨 가문의 후계자로서 대결하기 위해 다른 가문으로 시집가는 것을 포기한 것도 겨울이었다. 궁이의 인생 마지막 대결은 마삼을 상대로 섣달 그믐의 눈내리는 기차역에서 벌어졌는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본 것은 양측 사람들 몇몇과 떠나기 전 기차 창밖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던 승객들 뿐이었다. 궁이의 아버지는 “벽이 모두 금박으로 되어 있어” 금루라 이름 붙은 기루에서 무술인들의 환호 속에 엽문(양조위)과 대결하며 은퇴식을 치렀다. 그러나, 그 때 궁이는 닫힌 문의 창틈으로 대결을 지켜볼 뿐이었다. 여자에게는 기루 출입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무술인이 존중받던 시절에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평생 결혼도, 제자도 들이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고 마삼과의 대결을 준비할 때는 그녀가 알던 세상이 사라졌다. 세계 2차대전, 중국을 침공한 일본군의 무력은 무술인보다 강했다. 무술인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강할 수 없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불과 20여년. 하지만 그 때 무술인들의 시절이 끝났다. 궁이는 세상 어떤 남자보다 강했지만, 시대보다 강할 수는 없었다.

사라진 시대의 법도 따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궁이가 전쟁을 피해 온 홍콩은 옛 중국의 법도가 통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엽문과 기루에서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궁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든 시대의 규칙을 지켰다. 시대를 향해 발버둥친 것은 남자들이었다. 마삼은 일본 군부에 붙어 잠시나마 권세를 누렸고, 궁이가 목숨을 구해준 팔극권의 전수자 일천선(장첸)은 홍콩에서 우연히 궁이와 재회한 후 속해있던 조직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전쟁이 언제 끝났는데 규칙 따위 지킬 필요 없다며. 그리고, 엽문은 궁이와 마지막 만남이후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는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엽문이 궁이의 아버지와 대결하던 시절, 무술가의 대결은 문 안에서 이루어졌다. 주변인들이 문을 닫으면, 그 공간에 남은 두 사람이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전쟁 후 엽문이 살아간 홍콩에서 무술의 가치는 폭락했다. 8전. 엽문에게 시비를 건 무술인이 수강료라며 내놓은 돈이다. 마치 건달들의 영역 다툼처럼 도장끼리 시비를 거는 일이 쉴 새 없이 벌어졌다. 금루의 작은 기물 하나라도 손상시키면 지는 걸로 하자던 우아한 대결은 사라졌다. 대신 도장 전체가 박살 나고, 모든 문하생들이 동시에 덤비는 싸움으로 변했다. 전후, 중국이 아닌 홍콩에서, 무술인과 대중 사이의 문이 사라지며 무엇이 룰인지조차 모를 시절이 시작됐다.

그러나, 궁이는 자신이 “자신을 보고 천하를 봤지만” 중생을 보지는 못했다 했다. 엽문은 중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했다. 전쟁 후 가족도, 재산도 잃은 엽문은 먹고 살기 위해 악다구니 같은 중생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세월에서 살아남으며 자신이 배운 영춘권을 흥하게 만든 인물로 남았다. 엽문은 40까지 인생의 모든 시기가 봄이었고, 궁이를 만나러 모피 옷을 사던 그 때부터 겨울이 시작됐다. 그리고, 홍콩으로 와서 홍콩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그 때 쯤 그에게 다시 봄이 찾아왔다. 그 사이 무술인의 시대는 갔다. 다만 중생이 무술을 배웠다. 엽문은 새로운 시대를 연 일대 종사가 됐다. 그리고, 그 중생에는 이소룡이 있었다.

이소룡은 무술인의 철학을 영화에 옮겨왔다. 더 많은 사람들, 심지어 서양인들까지 중국 무술에 관심을 가졌다. 이소룡의 시대와 함께 홍콩 영화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한 때는 무술 영화가, 그 뒤에는 홍콩 느와르가, <황비홍> 이후 새로운 스타일의 무술 영화가 전 세계에 퍼졌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은 홍콩에서 1987년 <열혈남아>로 데뷔한지 25년만에 <일대종사>를 발표했다. 엽문이 이은 무술의 역사가 이소룡을 통해 홍콩 영화의 역사로 이어졌고, 홍콩 영화는 왕가위 감독이 활동할 시대를 열어주었다. “말은 오해를 낳는다”던 엽문의 말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말 대신 정성스럽게 세공한 화면으로 많은 것을 대신한다. 궁이가 엽문에게 품은 마음은 엽문과 대결 도중 가까이 다가선 순간의 눈빛으로,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하며 정성스럽게 입술을 붉게 물들이던 모습으로 남는다. 평생 겨울과 함께 살아야 했던 무술인에게 왔던 찰나의 봄을, 영화 감독이 영원히 남을 한 컷의 영상으로 남긴다.
 

 
궁이의 시대에 사진으로 남겨둔 기록이 엽문과 이소룡의 시대를 거쳐 영화로 재현된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열혈남아>부터 <화양연화>에 이르는 영화들이 한국에서도 컬트적인 팬을 낳았던 시절. 영화가 말이 아닌 이미지로 남고, 그런 영화를 찾아보던 사람들을 ‘씨네필’이라 부르던 시절. 그 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문 안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고, 보고, 썼다. 하지만 무술이 그러하듯 그 시대의 영화는 점점 사라져 간다. ‘씨네필’이라는 단어는 점점 쓰이지 않고, 영화평론가가 쓴 긴 평론보다 그가 SNS에 쓴 140자의 글들이 더 많이 리트윗 된다. 시대는 그렇게 변했다. 다만 왕가위 감독은 엽문이 그러했듯 수평으로 쓰러지지 않고 수직으로 서서 살아남았고, 어떤 무술과 영화의 시절에 대한 기록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한 여자에게 찾아온 화양연화를 영원한 이미지로 남기며.

“진정한 무술가는 단지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엽문이 살아남아 궁이의 뜻을 전했다. 이소룡은 사는 동안 무술의 철학을 전파했다. 이소룡의 말을 <일대종사>의 마지막 순간에 넣은 왕가위 감독은 그들과 영화의 시대를 기록으로 남겼다. 궁씨 가문의 무술, 형의와 팔괘는 사라졌다. 중국 역사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다만, 그래도 무술인의 정신은 살아남은 누군가에 의해 이어진다. 엽문은 난세에도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도 무술인이 문하생을 받는 원칙을 지켰다. 살아남은 자는 승리한 자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기록하는 자다. 사라진 시절의 봄과 겨울을. 그리고, 새로운 시절을 만들어갈 과거의 가치를. 그리하여, 왕가위 감독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엽문의 입을 빌어  묻는다. “당신은 어느 문파인가” 어느 것을 택하든 상관 없다. 다만, 자신의 시절을 돌아보는 사람은 그 시절이 끝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엽문처럼 앞만 보기로 다짐한 사람은 지난 시절의 짐을 지고 산다. 어느 문파를 선택하든, 당신은 슬플 것이다. 한 시절보다 더 오랫동안 사는 인간이, 다 그렇다.

글. 강명석 (웹 매거진 < ize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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