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덕분에 계획했던 <레미제라블> 읽기를 끝마치지 못한 채 영화를 보고 왔다.
시대배경과 대략적인 스토리를 모두 알고 본 영화는, 내가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을 보지 못해서였는지,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휴잭맨의 장발장은 화면과 구성의 강약을 조절해가며 큰 존재감을 주었다. 휴 잭맨이 아닌 장발장이었다면의 가정을 세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연기와 노래 감정의 표현 모두 완벽하게 느껴질 만큼 나에게 다가왔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팡틴 역할을 맡은 앤 헤서웨이는 역시 기대한 만큼, 소문만큼 최고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롱테이크 클로즈업으로 이어진 I Dreamd a Dream 의 한 시퀀스만 보더라도, 영화 전체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고 생각 될 정도로 그녀의 노래와 임팩트 있는 연기는 정점의 모습을 보였다. 코제트로 나온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아무래도 분량도 분량이지만, 어린 코제트 역할을 맡았던 아역 때문에 더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못한 느낌이었다.
역시 제일 아쉬웠던 건 러셀크로우. 그의 연기와 연기 중의 목소리는 좋았지만, 결코 영화와 인물에 크게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영화 내내 난 견디면서 들은 느낌이었다. 장발장을 20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추적해 온 자베르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고, 그가 그 시간동안 느꼈던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이 가지 못했다. 그래서 난 러셀크로우 본인의 모습 그대로, 자베르란 역할에 녹아들었다 할 만큼의 느낌이 되지 못했다. 눈빛과 연기는 괜찮았지만, 노래만 나오면 내 귀에서 자꾸 밟히는 그의 테너 음역대의 목소리를 정말 난 견디면서 봤다.
구성에 있어서도 여기저기 아쉬움 투성이이다. 음악으로만 봤을 때는, 원작(뮤지컬)을 빠짐없이 잘 담아냈고,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큰 스케일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음악들에 치중한 나머지 관객에게는 노래 이외의 감흥과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주지 않는것 같았다. 워낙 소문난 대작인지라 다른 영화에 비해서도 긴 러닝타임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세세하게 설명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치밀한 심리와 생각의 여유를 주지 못하는 인물들간의 갈등. 입장의 변화 등은 보고난 후에도 게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발장과 자베르가 맞부딪치는 순간들 만이라도 둘의 심리, 특히 각자의 신념과 포괄적인 용서 그리고 구원이라는 주제에 대해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면 좋겠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런것을 던져만 주고 혼자 열심히 달려가 버리는 느낌이다.
게다가 영화가 뒤로 갈 수록 힘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단적으로 초반 앤 해서웨이의 I Dreamd a Dream 부분과 후반 사만다 뱅크스가 부르는 Oh my own 부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똑같이 롱테이크 클로즈업 시퀀스로 이어지지만, 둘을 바라보는 카메라워크는 같을 지언정 두 사람의 사뭇 다른 노래와 연기 덕분에 분위기가 완전 다른, 그것도 앞의 그것 보다는 못해보이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뒤쪽으로 갈 수록 바리케이드 시위와 혁명, 그리고 대서사의 마무리인 용서와 구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야 하는데, 초반에 비해 후반으로 갈 수록 영화는 힘을 잃고 축축 쳐져 버리는 느낌이니, 바리케이드 시위에서 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 아니었다면 정말 마무리를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이다.
좋은 영화와 잘 만들어진 영화에는 차이가 있다.
난 음악과 배우의 연기 측면에서는 좋은 영화였지만,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로는 기억하진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어쩔 수 없이 이번 대선과 더불어 신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실패했다 평가받는 1832년 6월의 민중봉기. 그렇다고 해서 그 귀중한 그들의 혁명에 대한 열망과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말의 실패를 맛보았을 지언정, 그들의 신념과 열망의 본질이 실패했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장발장이 용서와 구원이라는 소명에 대해 평상 고민하고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하며, 그에 따라 일생을 살았던 것처럼, 그래서 코제트라는 희망의 열매를 만들어 낸 것처럼 나도 더 이상 절망과 안타까움의 안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 번, 내가 갖고 있던 신념, 이상, 그리고 그에 걸맞는 행동의 이유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해 준 이 영화. 물론 아쉬움이 많이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읽던 원작을 마저 읽고, DVD가 나온다면 구매해서 간직하고 싶다.
20121221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