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길의 민현. 그리고 민현 그대로의 민현. 질긴 시간의 흐름 속에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고비를 거치며 끈질기게 이어져온 두 사람.
고래잡이의 딸과 해녀의 아들. 바다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의 아들, 딸. 초등학교 입학식날 처음 만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그리고 반세기의 시간을 지나온 지금까지 이어져온 둘의 관계는 연애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세월의 흐름을 같이한다.
구룡소를 휘돌아 감싸고 있던 그 곶에서 서울로, 그가 몰랐던 시간의 그녀는 미국으로, 종내에는 두 사람 모두 고향인 그곳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생각해 보니, 내게 행복은 기억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 P.297
인생 전반을 거쳐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본능적으로 한 여자만을 느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름을 둘러쓰기 보다는 그냥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연애의 본질적 속성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대기에 더 가깝지 않을까.
1960년. 세길과 민현이 태어난 그 즈음에 같이 인생을 시작한 작가가 지내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듯한 책 한 권의 활자들. 역사의 흐름 속에 누군가는 세길처럼 물결에 자신을 띄워 흘러갔을 터이고, 누군가는 민현처럼 물결의 반대 방향을 향해 거슬러 갔을 터이다. 세길과 민현. 세상을 돌아돌아 어지럽게 흐르더라도, 수 많은 접점이 군데군데 존재하듯이 시와 때가 우연히 겹친듯 만나, 서로에게 굳이 집착과 속박의 덫을 씌우지 않고,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는 사람처럼 접점 위의 안락함이 존재한다. 그래서 또 다시 떠나는 민현을 바라보는 나이 든 세길의 눈엔 불안함 보다는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삶과 현실은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사랑과 이상은 언제나 그렇듯 어긋난다. 세월을 돌아 끝끝내 남은 건, 굳이 서로를 서로에게 귀속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두 사람과 그들의 나이만큼 이어져온 사랑 아닌 연애. 그래서 단 하나의 사랑이 될 수는 있지만, 단 한 번의 사랑은 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애.
P.288
"나는 그걸 보고 싶어. 오로지 그것만 봐도 돼."
언덕 위 보리밭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을 때 대여섯 마리의 고래가 한꺼번에 항행하다가 펄쩍 뛰어오를 때의 그 어마어마한 느낌. 고래 중 작은 혹등고래만 해도 사람 체중의 수백배가 넘는데, 최대 길이 이십 미터에 무게 팔십 톤에 이르는 참고래가 왜 그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서 수면 위허공으로 뛰어오르는지 알 수 없다. 경제성으로 계산이 안 되고 두뇌로는 예측할 수 없다. 그건 내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깨달음의 몽둥이질 같았다. 인생에 특별히 깨달을 건 없다는 깨달음.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이라는. 중요한 건 존재하며 느끼는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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