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하지은.
판타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몽환적 분위기의 글이 참 좋다.
레드포드 롤랑거리에 위치한 보이드씨의 7층짜리 저택 각 층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옴니버스로 구성된 이야기의 중심에는 3층에 사는 라벨이라는 특별한 남자가 있다.
라벨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 그럼 자신의 소원은 어떻게 빌어야 할까.
각 챕터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겐 저들만의 사정이 있고 무의식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자신이 소원을 이야기한다.
무심코 내뱉은 소원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도 위치를 옮겨간다.
날서지 않은 긴장감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1층부터 인물들에 포커스를 집중하며 각 층의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라벨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큰 궁금증을 자아낸다.
5층에 사는 오드리부인과 6층에 사는 의사 주스트씨를 거치며 무뎌보였던 긴장감은 첨예하게 돌변한다.
그리고 마지막 라벨에 관한 외전까지.
이 7층짜리 저택을 둘러싼 기묘한 일들과 분위기는 외전이 끝날 때 까지 라벨에 대한 특별한 미스테리를 놓치지 않고 흘러간다.
숨가빠지는 스토리는 '얼음나무 숲'에서 익히 보았던 그것보다 더 섬세하고,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내뱉어지는 감각적인 문체는 판타지라는 장르가 도대체 어떤건지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은 작가만의 특별함인지, 내가 모르는 판타지 세계가 간직한 유려함인지, 나에게 많은 질문을 갖게 해 준다.
한 곡의 교항곡으로 손색이 없다 생각되었던 '얼음나무 숲'의 개정판에도 기대감이 더해진다.
"숨으려는 듯, 혹은 더 도드라지려는 듯."